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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Jul 11. 2023

나의 '불렛 저널' 입문기

꾸준함


3월, 다치바나 다카시의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이란 책을 읽었다.  다치바다 다카시가 자신의 자서전 쓰기 교실에서 진행되었던 수업의 내용, 글쓰기 과정, 참여했던 학생들의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책의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이 수업에 참여했던 한 여성의 어머니가 자신의 딸이 '자기 역사 쓰기'를 시작하자 자신의 일기를 꺼내어 자료로 제공해 주었다는 에피소드였다. 그 어머니는 1935년부터 표지에 <자기 역사>라는 제목을 붙인 노트를 만들어 일이 있을 때마다 기록했다고 했다. 연월일이 분명한 그 일기장에는 '진료권 50전', 버스 왕복 두 명 20전'과 같은 물가를 알 수 있는 경제상황, '친척들로부터 임신 축하 선물 도착, 도즈카에 사는 오빠 홍백포, 가다랑어포', 같은 소소한 일상의 기록, '조금씩 눈에 보이는 듯하며, 어르고 달래면 웃고 '응응'하며 옹알이를 한다.' 같이 자세한 육아일기도 담겨있었다. 전시상황이었던 시절, 공습을 피해 친척집에 소개하게 된 곳에서 어머니는 자신들을 생활을 세세하게 일기로 남겨 20일씩 정리하여 떨어져 있는 남편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그 일기는 개인의 역사를 꼼꼼하게 기록하는 일이 가족 역사의 기록이며 사회문화적 자료로도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책을 덮고 공책을 한 권 샀다. 그리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3월 4일부터 호기롭게 시작된 나의 '자기 역사' 쓰기는 3월 말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4월로 앞 글자가 바뀌고 나자 여백이 글자보다 많아지더니 5월이란 타이틀을 달기도 전에 뚝 끊어져버렸다. 10분의 1만 빼곡한 다이어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의 수많은 공책들 중 대부분이 그러했기에 오히려 당연했다. 왜 일기장은 3개월을, 운동은 3주를, 다이어트는 3일을 넘기기 힘든 것일까? 의욕은 모든 것을 다 바꿀 것처럼 기세 좋게 쳐들어와서 스르르 뒤걸음질 치며 꽁무니를 빼는 파도 같았다. 작심삼일, 삼의 법칙은 어떻게 해야 넘어설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나 일기 쓰기는 작가가 되고 싶은 나에게 귀중한 자료가 되어 주는 동시에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거품이 될 거란 확신이 든 뒤였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유튜브 창에 다이어리, 일기 이런 것들을 검색해보게 했다. 그러다 정해진 틀 없이 자신의 취향대로 꾸며서 쓰는 다이어리를 '불렛저널'이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조금씩 바뀌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이제 3년째다. 처음 일 년간은 막무가내로 열심히 썼다. 그러나 글쓰기 실력에 한계를 느꼈고 깊이 있는 사유와 표현력을 동시에 기르고 싶었다. 친구와 의기투합하여 한참 유행하는 미라클모닝 열차에 올라탔다. 평소 혼자서는 읽기 힘든 두꺼운 책이나 고전을 선택해 함께 읽고 단상을 남기기로 약속을 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지만 아침 7시 기상을 5시로 앞당기는 것이 젓가락질처럼 몸이 알아서 하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8시 이후 금식이나 계단 오르기 미션과는 달랐다. 둘 다 힘이 들긴 했지만 좋아서 하는 일에서는 즐거움을 억지로 하는 일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전자는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후자는 그만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줄기차게 내놓고 있었다. 그리고 전자는 나를 감시해 줄 친구가 있었고 후자는 나만 눈 감으면 없었던 일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친구와의 미라클 모닝을 언제까지 계속 유지했는지 정확한 기억에 없다. 애초에 생체리듬이 다른 타인이기에 새벽 기상 약속이 오래가진 않았다. 그러나 함께 읽고 쓰는 일은 건강 상의 이유, 직업상의 문제 등으로 잠깐씩 쉬어 가는 기간들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함께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내게도 한 권 두 권 완성되는 공책이 생겼다. 좋아하는 일이었고 서로 간의 약속이었다는 점. 이 두 가지가 꾸준함 비결의 제일 큰 공신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목표에 대한 열정이 비슷하여 뒤처지지 않도록 견제해 줄 친구를 만날 행운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그것도 생활 전반에 대해서 말이다. 비비언 고닉의 말을 빌리지만 '사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이라는 영토를 힘겹게 횡단하다 국경이 맞닿는 곳에서 이따금 만나 서로에게 정찰 기록을 건네는 고독한 두 여행자'일 뿐인 것이다. 외롭지만 혼자서 해야만 하는 일이 더 많다.


불렛저널 다이어리에 대해 조금 알아본 뒤 나만의 스타일로 기록을 시작했다. 하이라이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일정)와 건강일지, to do list (할 일, 일정관리), 간단한 가계부 작성, 하루 일기를 한 페이지에 소분하고 시 한 편을 필사할 페이지를 따로 두어 하루에 두 페이지씩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하고 있는 일들을 쭉 나열하여 적어보는 일들은 내가 어디로 가고 싶어 하고, 또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도였다. 두 달이 지난 지금 냉장고 한 칸을 가득 채웠던 양파즙을 다 먹었고 방치되었던 영양제도 제 몫의 일을 하고 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 미뤄두던 845페이지의 벽돌책도 완독 100페이지를 남겨두고 있다. 5분이면 되는데도 며칠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던 스쿼트도 전자레인지 돌릴 때, 창문 열러 갔다가 바깥 풍경 보며, 칫솔질하며 등등 1분이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니 동그랗게 완료 마크를 표시할 수 있었다. 몇 년째 미루고 있던 시 필사도 두 달째 순항 중이다. 가끔씩 그려 놓은 손그림을 보는 것을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간직하기엔 아쉽지만, 감정일기를 들킬 염려가 없어 아무 문장이나 끄적이는 재미가 있었다.  필자와 독자가 같은 사람이므로 문학적 장치 하나 없는 일상적 단상은 몇 번을 읽어도 지겹지 않았다.


걷기를 시작한 것이 10여 년 전이다. 허리 통증이 심해져 일어나기도 힘들었는데 무거운 몸 탓이었다. 원래 걷기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살기 위한 의식처럼 매일 뒷산을 걸었다. 그렇게 일 년 정도하고 나자 나는 걷기를 즐기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부터 좋아서 하는 일은 드물지도 모른다. 목표에 맞는다면 꾸준히 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잘하게 되고 또 좋아하게 되는 것들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매일 꾸준히 해 왔던 걷기, 읽기와 단상 쓰기 등은 이제 미션이 아니라 습관으로 자리 잡아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스레 깨달았다. 습관을 만들어 가는 건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가 되려고 애쓰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시간과 꾸준함이 필요하다. 다 커서 다시 익히는 젓가락질이 쉬울 턱이 없다. 완료표시마크를 그려 넣기 쉬운 것에서부터 조금 더 작은 것도 잡을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꾸준히 하다 보면 콩 하나도 거뜬히 잡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쓰고 있다는 것은 읽게 될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이란 어디선가 들은 말을 떠올리며, 감시와 독려를 함께 해주는 다이어리를 친구 삼아 오늘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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