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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Aug 19. 2021

우리 엄마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수다 -엄마

이제 갓 40줄에 든 여자가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을 잃고 네 아이와 함께 남겨졌다. 짧은 생을 마감한 남편의 운명에 대한 연민 같은 건 느낄 여유가 없었다. 생때같은 어린 자식들이 이제 아버지 없는 아이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현실에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러나 먹고 살아야 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학교도 보내야 하기에 슬픔에 오래 빠져있을 수 없었다. 몸이 부서져라 밤낮 없이 일했고 아이들 구김 생길까봐 힘들어도 힘들다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모든 고통을 혼자 견뎠다. 기댈 것이라고는 시간 뿐이었다. 시간이 얼른얼른 아이들을 키워주길 바랐다. 얼른 커서 아빠 없는 아이들이란 소리 듣지 않게 되기를,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나도 이제 40을 넘기고 보니 그때의 엄마를 떠올려보게 된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충분히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아직도 두렵고 불안하고 부족한 것 투성이인 나이라는 것을 이제 알겠다. 때로는 내 한 몸 보살피며 사는 것도 버겁고, 중심 잡고 잘 살다가도 걷잡을 수 없이 휘청거리기도 해서 그럴 땐 누군가에게 좀 기대고 싶은 나이라는 걸 이제 알겠다. 천하무적이 되는 나이가 아니란 걸, 홀로 아이 넷과 남겨지기엔 너무 가혹한 나이란 걸 이제 좀 알겠다.     


내가 이 나이를 지나며 그때의 엄마를 떠올리는 것처럼 엄마도 지금의 나를 보며 엄마의 그 때가 떠오르시는 듯하다. 요즘 자주 그런 말씀을 하신다. 70이 되고 보니 나이 40은 아직 너무 어린데 그때 남편 잃고 혼자 애들 키우느라 몸이 부서져라 일해야 했던 내가 너무 가엽다. 내 인생이라는 것이 없었던 그 시절이 너무 안쓰러워서 자꾸 눈물이 난다. 그땐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살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는데 나 죽으면 내 새끼들은 어떻하나 싶어서 죽을 수도 없더라. 그저 하루 견디고 또 하루 견디면서 숨만 쉬고 살았다.라고.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하시면서 도시락을 4개씩 싸놓으셨고 늦은 밤에 퇴근 하셔서도 집 구석구석을 말끔히 정리하셨다. 학교 준비물 못 챙겨가서 기죽는 일 없도록, 수업료 제때 못내서 눈치 받는 일 없도록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챙기셨다. 망치질이 필요하면 망치질을 하셨고 형광등이 나가면 150cm 밖에 안되는 작은 키로 형광등을 가셨다. 집 안팎으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꼭 해결해주셨기에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아빠 없는 아이 티가 났는지 안 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속엔 결핍이 없었다.     


시간이 참 더디게 간다고 느끼셨을지, 시간이 가는지 멈추었는지조차 관심 둘 겨를도 없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시간은 흘렀고 네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엄마가 그렇게 기다리던 어른이 되었다. 자기 밥벌이는 할 수 있게 되었고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해서 잘 사는 모습을 보시며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부족한 게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그것만큼은 한 치의 부끄럼 없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그건 엄마가 말씀 안 하셔도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말 속엔 ‘더 잘 해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 그래서 엄마가 참 미안해.’가 숨어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 엄마도 참.. 어떻게 더 잘해줄 수 있다는 건지...

“엄마는 정말 최고의 엄마에요. 그때도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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