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향기 속 사랑받던 어린아이

챕터 1. 레더(Leather)

by 송수지

최근에 오랫동안 타던 차를 바꾸게 되었어요. 바꾸기 전에는 고민을 하기도 했는데 그 시간이 무색할 만큼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면서 새로운 차에 적응 중입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타면 포근하기도 하고 실제 푹신함 보다 더 폭신하게 몸을 감싸주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운전하는 시간도 전보다는 조금 좋아진 것 같습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탔을 때 느껴지는 가죽 시트의 냄새예요. 향기라는 표현보다는 왠지 냄새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만 같은 투박함이 느껴지는 향이 납니다.


제가 이 레더 향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 덕분인 것 같습니다. 종종 유년시절의 기억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런 편은 아니에요. 인상 깊은 몇몇만 아주 약간 기억하는 편입니다. 종종 꾸던 꿈이 하나 있는데 어릴 적부터 커서까지 같은 꿈을 꾸곤 했어요. 아주 꼬맹이인 저는 둥둥 누군가에게 안겨서 흔들리면서, 방글거리며 시장길을 가고 있어요. 그 길을 지나면 가죽 향기가 강하게 납니다. 끈과 가방 같은 물건들이 놓여 있는 길을 지나면 아주 기분 좋은 공간에 도착하는 내용의 꿈이에요. 저는 이 길이 실제인지 어른이 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는데, 우연히 어머니와 말을 하다가 고모할머니네 가게로 가는 길임을 알게 되었어요. 신기하기도 재밌기도 한순간이었습니다. 이 꿈을 꾸면 항상 기분이 좋고는 해서 좋아하는 꿈이었거든요.


아기였을 때 어머니의 고모가 운영하시는 시장 가게에 자주 들르곤 했다고 해요. 거기서 어른들께 이쁨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아기인 저는 그때 감정이 몹시도 좋았던 모양입니다. 정말 사소한 추억인데, 고모할머니께서 과자를 일부러 떨어뜨리시고는 했다고 해요. 그럼 제가 지지라고 밟아서 못 먹게 했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일부러 먹으려는 척 장난을 하고요. 이 이야기는 크면서 들려주실 때가 몇 번 있었는데 말씀하실 때 그 표정에서 저를 이뻐하셨던 마음이 짐작되곤 했습니다. 아마 작은 기분 좋은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서 아기에게는 좋은 감정들이 생겼겠죠? 그래서인지 그 기억은 꿈으로 어렴풋이 저에게 남아 있었네요. 꿈을 꾼 날은 평소보다 밝은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하곤 했습니다.


또 한 가지의 기억은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것 같아요. 아버지 차를 타고 뒷 좌석에 누워서 잠이 들락 말락 하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누워도 공간이 남을 정도의 작은 어린아이였던 것 같아요. 그 느낌들이 기억이 나는데 눈이 부셔서 그 당시 아주 좋아하던 투명한 가방으로 얼굴을 가리고 잠이 들고는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큰 효과는 없었을 듯하네요. 어른들이 웃었던 듯도 하고요? 투명한 가방이 햇볕을 받아 무지개 빛이 얼굴에 비치는 느낌, 아주 편안하고 노곤하고, 흔들리는 차의 느낌, 귀에 들리는 소음에 잠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그때 맡았던 가죽 시트의 향기가 편안했기 때문인지 저는 레더향에서 편안함과 안정감, 따뜻함을 느낍니다.


이 느낌은 공방에 출근해서 차를 한 잔 우려 마실 때의 기분과도 비슷합니다. 11시 오픈이라서 10시 반이나 조금 넘어 도착하고는 하는데, 최근에는 걸어서 오고 있어요. 도착하면 몸이 살짝 데워지고 개운한 기분이 듭니다. 문을 열고 들어와 제일 먼저 불을 켜 보아요. 작업대 옆 콘센트 전원을 켜고 포스기 전원을 켭니다. 2층으로 올라가 가져온 짐을 정리하고 커피포트에 물을 넣고 끓여 찻물을 준비합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고소하기도, 달콤하기도, 향이 진하기도, 가벼워서 좋기도 한 차 한 가지를 골라 우려내 봅니다. 들고 내려와서 노오란 작은 티백 받침으로 구입한 그릇에 티백을 건져내고 향을 맡아봅니다. 노트북을 열고 오늘 할 일을 마음속으로 정리해 보는 시간을 이제 가져봅니다. 물 흐르듯 흐르듯 자연스럽게 오늘도 천천히 오전과 점심시간 전 그즈음 어딘가를 편안히 지나보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레더향의 느낌과 비슷하게 닮아 있어요.



레더의 느낌은 클래식한, 오래도록 변치 않는, 변함없는 것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노곤함, 평화로움, 온기, 이런 단어들과 맞닿아 있는 레더는 저에게는 오래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어줍니다. 깊고 풍부해서 분위기 있는 어두운 공간에서 나지막이 울리는 재즈 음악이 떠오르기도 해요.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무드를 가졌지만, 달콤한 바닐라와 가벼운 향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부드러움을 가졌습니다. 어릴 때 제가 보았던 무지개 빛깔 향기와도 잘 어울릴 것 같은 향이에요. 클래스 중 시향 할 때는 조금 시간을 두시길 추천드리기도 합니다. 첫 향기는 날카롭거나 진할 수 있지만 잠깐 두었다 맡으면 무게감 있는 은은함이 올라와요. 시간을 두고 두면 더 좋아지는 우리 추억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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