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들의 조용한 응원

챕터 3. 프랄린(Praline)

by 송수지

저는 최근 자그마한 동네 향수 공방 겸 꽃집을 오픈했어요. 많은 분들이 응원을 와주셨고 축하 연락들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찾아왔어요. 케이크를 사 와서 촛불도 불고 왜 그렇게 웃겼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눈물이 날 때까지 웃다가 재밌게 놀다 갔어요. 축하 파티도 노래 부르면서 해보고, 대박 기원 만세도 해보았어요. 미리 이쁜 선물들도 보내 주고 마음을 많이 써주고 있음을 느낍니다.


어릴 적엔 한동네에 살아서 학교 가는 길에 차례차례 만나서 가고는 했었어요. 1번이 저였고 2번 3번을 만나서 무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등굣길을 함께 했습니다. 겨울에는 추워서 주차된 차 사이에 쭈그려 앉아 바람을 피하기도 했지요. 지금 생각하니 10분 15분 걸리는 거리를 10분씩 15분씩 서로를 기다리며 긴 시간 등교를 했겠네요. 그 시절에는 소소한 얘기를 나누며 만나서 가는 자체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학교 마치고 친구 집에서 먹었던 사발면 육개장은 아직도 좋아해요. 2층에도 사다 두었는데 입맛 참 변하지 않네요. 비디오 빌려보고 놀고 방학되면 총 천연색으로 염색하고!


“핑크, 파란색 염색 해보신 분 계세요?”


그 시절엔 핫 했을 거예요 분명! 커서 다시 만나서는 수시로 만나서 놀고 셋이 삼겹살 구워 먹고, 후식으로 닭 한 마리 반 먹고, 그 후식으로 빙수집도 갔었지요. 그랬던 친구들이 이젠 모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요. 같은 동네에서 똑 닮은 삶을 살던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꽤 다른 삶을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먼저 어른이 된 것 같은 친구들은 서로의 자리에서 이쁜 가정을 이루어 만나면, 괜스레 혼자 가끔 마음이 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만치 앞서서 너네만 빨리 커버린 것 같더니 옛날 그때랑 똑같이 눈물이 날 때까지 웃기는 거 보면 그대로인 듯도 합니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소중한 관계들이 있습니다. 이 친구들 또한 그러합니다. 사는 것이 달라서 가끔 말거리가 떨어지기도 하지요. 어쩌면 갈수록 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또 오늘처럼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 눈물 날 때까지 웃겠지요.


횟집을 하며 아들 둘을 키우고, 회사를 운영하며 남매를 키우고, 프리랜서이며 싱글인 제가 있습니다. 먼저 학부형이 된 친구는 이제는 저와는 다른 고민을 하겠죠? 그룹 채팅방에 999+을 쉼 없이 만들던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바빠져서 꽤 뜸한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서운함이 없는 이유는 뭐였을까 가만 생각을 해봅니다. 말을 안 해도 서로의 입장을 짐작했어서 그런 듯도, 가끔 터져 나오 듯 힘든 이야기를 나눠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마음은 여전히 나누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하는 사이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며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인 듯도 하고요.


집에 돌아가며 연락을 나누는데 친구가 글을 보내두어 저는 오늘 좀 울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닌데 멋지게 해내고 있는 친구야 응원한다. 부딪혀가며 열심히 해보자!”


주말 내내 행사 진행을 해서 체력이 바닥나기도 했고, 안 하던 일이라 아직 공방을 지키는 것만도 체력에 부치는 것이 느껴집니다. 화분을 들고 나오다가 비틀해서 아끼는 화병을 깨고는 아침에 속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쌓였던 감정들이 튀어나와 버렸어요. 좀 울고 나니 마음이 후련함을 느낍니다. 여러 이유로, 상황들로, 저도 정확히 모르는 복잡한 마음으로 속이 말이 아니었었나 봅니다. 너도 아까 이런저런 이유로 속이 말이 아니었다 하니 이게 공감돼서 다행인 건가 큰일인 건가.


아마 이 자그마한 공간을 마련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감정을 많이 느끼는 요즘입니다. 생각지 못한 때에 누군가로부터 응원을 받고 있습니다. 주변에 마음을 써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겪지 않았다면 몰랐겠지요. 신세 지고 싶지 않아서 아무리 가깝다 해도 부탁하는 마음이 어려웠었는데 “너도 내가 이러면 당연하게 해 줄 거잖아!” 하더군요. 생각해 보니 맞아요. 그쯤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어요. 신세라는 단어는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았어요. 내가 내민 손을 잘 잡아주어서 어제가 힘든 하루긴 했어도 바쁜 순간에 더 바쁜 언니가 도와주고 가주어서, 간식을 사다 주어서, 작은 응원들을 계속 계속 누군가가 보내 주어서 좀 많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챕터를 쓰고 나니 이제 배가 고파져서 아까 먹던 초콜릿 케이크를 먹을까 합니다.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니 초코류의 달콤한 향이 나는 프랄린이 떠오릅니다. 저는 평소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문득 떠올라한 방울 씩 떨어뜨려 주면 꽤 좋은 향으로 바꾸어주는 향이기도 합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변화를 이끌어 주는 향료로 의외성을 가지고 있어 매력적인 향료입니다. 누군가 계속 나눠 주었던 작은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저에겐 오늘 마음이 가벼워지는 힘을 주기도 했음을 저도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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