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4. 만다린(Mandarin)
얼마 전 암에 관한 이야기를 쓴 글을 보았어요. 며칠 전부터 수술받았던 기억이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벌써 햇수로 3년이 되었네요. 2022년 가을 저는 갑상선 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너무나 잘 흘러서 돌아보니 벌써 이만치 세월이 흘렀네요. 그러고 보니 목의 수술 자국도 많이 옅어졌습니다.
저는 너무 다행스럽게도 가족력 때문에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체크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빠른 발견으로 수술만 받으면 되는 상태였습니다. 모양이 안 좋고 석회가 있어서 가능성이 높음을 들어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의 준비가 되었던 것 같아요. 결과를 들을 때는 꽤 담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처음 하는 수술이라 걱정되고 겁도 나서 돌아보니 마음이 불안정했기도 했었습니다. 요즘은 방법도 여러 가지라서 결정할 것들도 꽤 되었어요. 이맘때는 마음이 얼마나 흔들리던지요. 모르는 게 많아서 전 그때 제가 그냥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처음 진단을 해주신 선생님께서 감사하게도 “겁먹지 말고 별거 아니니 마음 딱 먹고 수술합시다!” 아주 유쾌하게 말씀해 주셔서 제 마음의 짐을 덜어주셨어요. 이래저래 고민하던 차에 수술을 해주신 교수님을 만났고, 상담을 받고 나오니 마음이 결정되고 동시에 편안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흉터는 꽤 남을 것 같았지만 안전제일! 주의자라서 저는 요 방법을 택했어요. 다정하게 설명해 주시는 모습에, 배려해 주시는 말들에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서 빠른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수술을 했던 병원은 작은 티비 한 대를 병실 사람 모두 같이 봐야 해서 입원 중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암 병동이라서 저희 부모님 정도의 연령대 분들이 계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생각지 못하게 우쭈쭈 이쁨을 받았었습니다. 수술 뒷날은 밥을 삼키기 힘들어서 끙끙 대면서 밥을 먹었더니
“밥을 한 그릇을 다 먹네 기특하다. 잘했다. 아고 잘 먹네.”
걸어서 화장실이라도 가면
“벌써 화장실을 저래 걸어 다니네! 역시 젊다. 회복력이 좋다. 오늘은 더 잘 걷네?”
이런 칭찬받고 입원 생활할지 상상이라도 했을까요? 덕분에 저는 제가 진짜 뭘 잘하는 것 같고 진짜 회복력 최고다 생각했었습니다. 나 쫌 대단한데? 생각했었지요. 칭찬의 힘이란.
한 분은 암 4기로 수술은 불가능해서 항암 치료를 받고 계셨습니다. 병명을 듣기 전까진 상상도 못 했었어요. 너무나 밝고 유쾌하셔서 그렇겠죠. 시간이 지나며 지내면서야 실감이 났었습니다. 자칫 안 좋은 생각으로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 몸이 아프면 우리는 때로는 너무 쉽게 그 길로 들어서는 것 같아요. 저에게까지 밝고, 긍정적이고, 환한 마음을 나눠 주셨었습니다. 항암 치료로 암세포가 반이 줄어드셨다는 말에 절로 끄덕끄덕 수긍이 갔어요.
그런 결과는 드문 것이 당연하고 힘든 일인데 삶을 대하는 태도를 잠깐이나마 들여다보아서 일까요? 너무나 당연한 결과 같았습니다. 이젠 나눈 대화 하나하나가 기억은 나지 않네요. 하지만 얼굴과 표정에서 느꼈던 느낌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잘 모르는 사람임에도 제 마음이 열렸던, 생각에 잠길 겨를도 없이 농담으로 대화를 걸어주셔서 이내 마음이 밝아졌던, “맞아 내가 심각할 필요가 없지.” 생각하게 되었던,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고마움의 한 부분입니다.
입원 중엔 수술 부위 소독을 해주는데, 의사 선생님 한분이 처음이신지 소독하는 방법 설명을 듣는 소리가 나더군요. 죄송하지만 저만은 아니길 바랐습니다. “근데 원래 이런 생각하면 딱 걸리는 거 아시나요?” 참 얄궂게도 선생님께서 제 이름을 부르시더군요. 잔뜩 긴장했는데 다행히 소독은 무사히 마쳤어요. 근데 밴드를 붙여 주시면서 이쁘게 붙여주고 싶어 하셨지요.
붙였다가 잘 못 붙여서 떼서 다시 붙이시고 2,3번 정도 그런 것 같아요. 괜찮다고 해도 잘해주시고 싶은 마음이 크셔서 완벽하게 해 주셨었죠. 너무너무 아파서 병실에 오니 등이 다 젖어있어서 옷을 갈아입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웃기네요. 선생님은 기억 못 하시겠죠? 진짜 진땀 나게 아팠지만 너무 열심히 하시고 정성을 다하셔서 저도 마음을 좋게 썼던 것 같습니다. 아프다고 신경질적이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게 병실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이겠죠. 운이 좋게, 복이 있어서 좋은 분들을 만나서 무사히 그 과정을 지나왔습니다.
큰 병원이라서 대기 시간이 길어서 대기실에 있다 보면 여러 상황을 마주쳐요. 때로는 암이 전신으로 퍼져서 전신 검사를 한신다는 소리가 들리기도, 펑펑 울면서 나오는 제 또래의 여성분을 보기도 합니다. 마스크 속 제 코끝도 같이 찡해지곤 했습니다. 제가 그 마음들을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요. 암이라는 얘기를 듣고 티가나게 어두워졌던 순간이 있었는데 전이검사를 하고 기다리면서였습니다. 전이가 된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는 당연히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하는 검사일뿐인데 그 가능성 만으로도 무섭고 두려웠어요.
그 가능성이 사실이 되었을 때는 겪지 않은 사람은 짐작하기 힘든 두려움인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신 또는 지나시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시겠죠. 저는 수술만으로 그렇게 겁이 났었는데,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간간이 저도 진심으로 기도 하겠습니다. 저는 불교인데 제 방식대로 그냥 마음대로 기도를 많이 해요. 운전하다가 사고 난 분들 지나치면 무사하시길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기도하고 죽은 동물들 좋은 곳으로 가라고 기도하곤 합니다. 작디작은 저의 방법이지만, 종교를 떠나서 마음을 다해봅니다. 긴 터널을 지나고 계신 분들 모두 지나시다가 작은 등불 하나 만날 수 있으시길, 무사히 터널을 나와서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한 번은 바쁜 일이 있어서 병원 시작 전에 대기하려 갔더니 담당 교수님께서 조금 일찍 진료 시작을 하시더군요. 항상 사람도 많고 기다리는 저희도 그렇지만 교수님은 너무 힘드시지 않으실까? 생각을 하곤 했었어요. 제 차례가 되어서 진료실로 들어서면 늘 빙긋 미소 지으시며 “잘 지내셨어요?” 안부를 여쭈어 주십니다. 그럼 저도 웃으며 “네, 잘 지냈어요.” 대답을 하고는 합니다.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으실 만도 한데 어쩌다 조금은 긴장했던 마음도 풀어지는 순간입니다.
수술 후에는 매일 아침 갑상선 약을 먹으며 몸속의 호르몬 수치를 맞추어 주어야 해서 피검사를 매번 받고 있어요. 호르몬 외에도 여러 가지 수치 검사를 하는데 처음엔 회복이 되지 않기도 했고 컨디션도 많이 안 좋았었어요. 수치가 좋지 않은 부분은 빨간색으로 나오는데 온통 빨간색 투성이었었죠. 주의 사항을 듣거나 다음 검사에서 수치들을 유심히 교수님과 살펴보곤 했었습니다. 최근 검사에서는 모두 검정 글씨에 심지어 비타민D 수치까지 완벽! 교수님께서 “완벽합니다. 100점이에요. 백점!” 특유의 온화하고 느긋한 목소리로 말씀해 주셔서 저도 환하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인사를 전해 보았습니다. 너무 기분 좋아서 나오면서 어디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하긴 했어요.) 글을 적는 지금도 너무나 감사하고 웃음이 지어집니다.
제가 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하나 있어요. 병실 생활 내내 웃음을 주셔서 너무 고마웠는데 번호를 물어보셨을 때 겁이 너무 많아서 못 들은 척했어요. 행여나 많이 아프시단 소식이 들릴까 두려워서였습니다. 그게 좀 아쉬워요 지금 연락처를 알면 전화드려서 잘 계시나 안부도 묻고 제가 우리 이야기 글로도 쓰고 있어요. 재잘재잘 말도 하고 싶습니다. 혹시나 이 글을 보실 수도 있으실까요? 그러면 꼭 연락 주셔요. 안부가 궁금하네요.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서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새벽쯤이면 옆 침대에서 귤을 까드시는 분이 계셨어요. 컨디션이 좋지 않으셔서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는데 그 당시는 영문을 몰라 잠이 자꾸 깨서 왜 저러실까 했어요. 그러다 항암 치료를 받으시면 속이 안 좋으셔서 가라앉히시느라 드신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새벽부터는 잠이 깨어도 그저 좀 편하시길 바랐어요.
향료를 사용하면 시트러스류의 오렌지, 만다린, 레몬 향기를 자주 맡습니다. 만다린 향기는 그중 제가 가장 좋아하기도 하고 향수에 사용해도 바디 제품류에 사용해도, 어디에나 잘 어울려서 자주 손이 가고는 합니다. 귤껍질을 막 깠을 때 과즙이 얼굴에 튈 때 나던 새콤하고 상큼한 향기가 퍼집니다. 기분을 상승시키는 효과도 있고 피로가 풀리는 효과에 천연 에센셜 오일을 바디 워시류에 사용하고는 합니다. 향기에는 푸르스트 효과가 있어서 어떤 향을 맡으면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고, 우리를 그 시간으로 데려다 주기도 합니다. 만다린 향기를 떠올리며 글을 적어봅니다. 모두들 그저 잘 계시기를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