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같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챕터 5. 코튼(Cotton)

by 송수지

한 달 만에 오롯이 쉬는 날을 가졌어요. 근데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자.’ 마음먹어 놓고 곧 있는 수업 준비로 반나절을 사용하고는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번뜩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 쉬자 마음먹고 ott를 틀어서 무작정 영화들을 찾아보았어요.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보고 싶은 것이 없어서 한참을 찾아보다가 얼마 전 잠깐 보았던 예능에 나온 배우 얼굴이 보여서 한 영화를 생각 없이 틀어 보았습니다. 제목은 ‘패스트 라이브즈’ 무심코 튼 영화 한 편에 저는 푹 빠져들고 말았어요.


부산에는 영화의 전당이라는 공간이 있어요. 공연과 대중영화, 영화로는 조금 낯선 나라들의 영화, 시네필로 같은 영화감상 후 배경 이야기를 들어보는 프로그램도 있어요. 너무 좋아서 두 번 연속 다녀오기도 했지요. 공방 2층에는 포스터도 붙여 두었어요. 봄, 가을쯤에는 야외에서 공연이나 영화를 즐기는 프로그램도 있어요. 그 특유의 분위기와 공간, 공간에서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향들을 사랑합니다. 서점에서 우리가 느끼는 서점 냄새처럼 그 공간을 생각하면 향기가 떠오른다는 것이 비슷합니다. 영화의 전당만의 냄새가 나요. 넓은 공간 텅 빈 듯 하지만 햇살이 내리쬘 때 풍기는 건물의 냄새가 납니다. 그 무드들을 모두 너무나 좋아해 센텀 근처에 살았던 친구와 제집처럼 드나들곤 했습니다.


오늘 그 느낌이 들었어요. 영화의 전당에서 영화를 볼 때면 그 영화에 푹 빠져들어 빨려 들어가듯 영화 속으로 들어가고는 했었는데 그 순간을 느꼈습니다. 푹 빠져드는 것을 좋아해서 D열이나 없으면 차라리 맨 앞을 고를 정도로, 앞에서 보는 것을 좋아해요. 오늘 그 느낌을 받았습니다. 빨려들 듯이 영화 속으로 들어갔어요. 오래전 어린 시절 친구였던 두 주인공이 화면으로 만나는 순간이었어요. 남자 주인공이 “어, 너다!” 이 말 한마디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말도 안 되지만 “보고 싶었어.” 화면 속 주인공들의 눈빛, 세세하게 짓는 표정, 손짓, 작은 것 하나하나에 집중되고 영화 속 상황에 몰두하게 되었어요. 그 순간에 정말로, 남김없이, 편안하게, 느긋하게, 여유롭게, 늘어지는, 쉬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영화들 만의 리듬이 있다고 느껴져요. 잔잔한, 경쾌한 혹은 스산하기도 한 각자의 박자감이 있습니다. 음악 같은 각자의 리듬과 속도감으로 순간들을 이어갑니다. 저는 잔잔함 속에서도 그 작품 특유의 경쾌함을 보여줄 때 그 속에 빠져드는 것 같아요. 패스트 라이브즈가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잔잔하고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화면 속, 당황스러움을 표현하는 듯 작게 동요하는 손, 색감, 모든 것들에 시선을 뺏겼습니다. 모든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흐름들을 좋아해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동화, 책, 만화영화, 장르에 상관없이 영화들을 좋아했어요. 그중 디즈니 영화는 아직까지도 좋아합니다.


아주 어릴 때 라이언킹이 나왔는데 너무나 좋아해서 돌려보고 돌려봐서 대사를 거의 외웠었어요. 몇 년 전 라이언킹 실사 영화가 나와서 보러 갔다가 몇몇 대사를 아직도 외우고 있어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정말 좋아했나 봐요.


초등학생 즈음 기억 같은데, 제가 책이나 영화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부모님이 말씀하셨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너는 영화를 이렇게 좋아하니, 커서 영화 평론가가 되면 되겠다.” 어린 저는 “아니, 난 못해. 모든 영화가 너무너무 재밌거든.” 모두 웃음이 터졌었어요. 정말 그랬어요. 누군가 재미없다고 했던 비디오를 빌려봐도(비디오 보던 시절!) 모두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진심으로 재미있게 보고는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무얼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이건 이게 재밌고, 이건 또 요런 부분이 좋네 생각했어요. 아마 그 만의 장점들을 콕콕 잘 집어 내었던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어 되짚어보니 어린 시절 저에게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때로는 불평, 불만이 넘쳐나고 이건 이래서 또 저건 저래서 저도 모르게 저의 잣대를 들이대고 평가를 하지는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비단 영화뿐만이 아닌 사람에게도 그랬던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가 어쩌면 저보다 더 어른이었네요. 오늘부터는 의식적으로라도 좋은 점, 무언가 혹은 사람에게도 그 만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밝은, 마음이 화사해지곤 하는 지점들을 찾아보고 눈여겨보아야겠다. 마음을 먹어봅니다.


프리랜서를 처음 시작하고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저는 발이 넓지도 않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이런 사람들도 프리랜서를 하나? 고민이 되었었죠. 처음엔 비는 시간들도 많았고 가만히 있으면 고민은 살을 붙여서 눈덩이 같이 불어나려고만 했습니다. 그럴 때면 제가 좋아하는 코스로 무작정 출발해버렸어요. 먼저 금련산 역에 내려서 광안리 해변을 쭉 걸어 봅니다. 끝으로 가면 센텀으로 넘어가는 강변이 보여요. 이제 땀이 좀 났기 때문에 불어오는 짭짜래한 바람이 참 시원해서 속이 시원해집니다.


강변을 따라서 쭉 걷다가 다리를 건너서 영화의 전당으로 들어섭니다. 보고 싶었던 영화 티켓을 끊고 커피나 페퍼민트 아니면 카모마일 한 잔을 들고 영화관 앞 쪽에 자리를 잡아봅니다. 그렇게 1시간 반을 2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기분이 한결 나아집니다. 그렇게 시간들을 지나왔네요. 그 속에서 위로도 받고 용기도 얻고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작품 속 숨겨져 있는 의미들이 나에게 말을 붙이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영화는 너무도 꼭 필요한 시기에 찾아와 주어 그 순간의 저에게 꼭 필요한 말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우연한 순간들이 겹쳐지고 쌓여서 저를 바로 서게 해 주었던 듯합니다.


그 순간들은 저를 편안한 마음, 고요함, 잔잔함에 머물게 했습니다. 향에는 코튼 향이 이런 마음을 꼭 빼닮아 있습니다. 섬유유연제 향, 뽀송한 빨래 향, 화이트 셔츠 향으로 자주 묘사되고는 합니다. 조카는 다솜이 이모 옷에서 나는 향기라고 하더군요. 아마도 좋아하는 이모에게서 나는 향, 이모가 사랑스러워하며 안아줄 때 이런 포근한 향이 났나 봅니다. 그 기분이 짐작되어서 저도 따뜻해집니다. 나른하고 졸리으는 휴식 같은 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겠죠. 저는 이 향을 봄비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계절이 아닌 따뜻한 봄 부슬부슬 살짝 내리는 비에 발길을 멈춰서 잠깐 휴식을 취하는 기분 같기도 합니다.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이런 휴식 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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