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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로예 May 11. 2024

숲과 빛 1-3



 202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의 결과를 본 뒤 내 마음은 오랫동안 친구가 없었던 사람의 것과 같이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는 비명을 질러댔다. 강력한 상처가 지나간 자리에 회복력이 있고, 어쩔 줄 모르겠는 마음과 나부끼는 부스러기들이 있다. 나는 그때 쓴 초고를 삼 년이 지나 다듬고 있다. 지금 기억하려고 애써보면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바라고 실망했던 건지, 당시의 나를 알기가 힘들다. 주술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후보가 3위를 했던 사실에 좌절한 것은 확실했다. 선거를 망치고 싶어 한 사람이 한 도시 안에 그렇게나 많았으니까. 상처는 선거만의 문제가 아니었으리라. 선거는 이미 울고 있는 사람 앞에서 마지막으로 쳐진 박수였을 테다. 한 번의 박수만으로도 사랑의 감정이 증오로 뒤바뀌거나 누군가의 기억 속에 평생 남기에는 충분하지만 말이다.      


 처음이 아닌 듯 매번 처음인 상처를 겪으며 나는 또다시 어딘가를 통과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기분이었다. 많은 문제가 그러하지만 정치의 부당함을 마주한 무력함이란, 터널에 갇힌 사람의 그것과도 비슷하니까. 한국인이라면 아무리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근 십 년 동안 정치 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다.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죽기라도 할까 봐. 터널은 자연물은 아니지만 내 인식 속에서 자연물에 가깝다. 특정한 자연적 조건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곳에 터널을 설치하게 한다. 그런 데를 지나야 만 하는 막막함 속에서 며칠 지내던 나는, 숲에서 길을 잠시 잃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두 상황은, 각각 작은 감방과 시 한 편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본질적 차이가 크지만, 얼토당토않은 데서 길어 올린 아름다움이라 하더라도 내게는 필요했다.



 그해 1월 제주살이를 시작했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요가원을 찾았다. 그즈음 지나치게 소진되어 운동을 중단하다시피 한 상태였는데도 막상 도착하자 요가원이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 사로잡혔다. 실오라기 같은 재미와 의무가 주어지기만 하면 하루 중의 모든 노력과 시간을 쉽게 쏟아붓는 편이다. 매일의 여행과 그곳에서 얻은 일자리, 또 완전히 새로운 룸메이트들과의 대면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소진적으로 보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미리 요가원에 지불해 놓기로 했다. 방황인지 방임인지, 친교인지 대인기피인지조차 분간 가지 않을, 아무리 얼렁뚱땅한 여행을 하고 바보처럼 돌아가게 된다고 해도 나중에 최소한 요가원의 회원으로 있었던 사실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



 토산리의 작은 요가원은 깊숙한 항구 옆 숙소에서 시가지까지 나와 버스를 타고, 또 이십 분을 더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제주에서 가장 넓은 해변을 고스란히 따라 걸어야 할 때의 칼바람과 가끔 불운한 마음을 안겨줄지도 모를 배차 간격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사실상 그곳에서 어딘가로 나갈 때의 기본 조건이었기 때문에 어느 날 나는 수업에 가려고 자연스럽게 나섰다. 선생님과 미리 연락을 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토산리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밤의 숲길 앞에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가로등이 없고, 빽빽한 수목과 덩굴로 뒤덮인 오솔길. 그렇게 어두운 길은 태어나 처음 보았다.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도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다. 그곳을 지나는 동안 동물과 마주칠 확률은 낮아 보였지만, 민가와 사 차선 도로 사이를 잇는 길이니 한두 명씩 마주치는 길이라면 바로 그것이 무서웠다. 길은 무언가 빨려 들어가 사라져도 모를 블랙홀처럼 보였다. 나는 왔다가 돌아가야 하는 기분의 낙차를 느낄 새도 없이 요가원에 다시 문자 했고 ‘여기는 무조건 아침 수업’이라고 마음을 먹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길을 잃었다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이것이 떠오른 첫 번째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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