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 - 북촌 - 옥수
퇴사 3개월 차.
가끔씩 머리 굴리다가 오히려 내 꾀에 빠질 때가 있다.
퇴사 3개월 차인데 시간 '잘 보냈다'라는 소리를 못 들을까 봐 전전긍긍 중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나만 만족스럽게 잘 보냈으면 된 것 아닐까?
회사 다닐 땐 (절대) 불가능한 몇 가지들이 있다.
장기-여행, 성형/시술, 맛집 줄 안 서고 먹기, 자기 관리(운동 등) 등이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회사에 갈지 정하지 못했다.
특히나 어떤 산업에 들어가고 싶은지 모르겠다.
쉬면서 할 일/하고 싶은 것들을 계획하다가 갑자기 멍해졌다.
이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 보니, 회사 다닐 때 물리적인 시간 때문에 못했던, 평소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
뭔가 이것저것 새로운 것들을 찾아서 맥락 없이 하다 보면 막상 지나고 나서 내가 뭘 했는지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유난히 새로운 것들을 경험했는데, 가장 먼저는 오늘이 빼빼로데이라는 점.
어제 술을 마셔서 늦잠을 잤는데, J가 빼빼로를 가져다 놓았다는 문자에 부리나케 1층으로 달려갔다.
기분이 너무나도 좋아져서 갑자기 들떠버렸다.
이어서 빼빼로 카카오톡 선물까지 받으니 기분이 더할 나위 없었다.
요즘 들어 북촌에 출근도장을 찍고 있는데 오늘의 목적지는 MMCA다.
지난번 이건희 컬렉션에 다녀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오늘 행선지는 MMCA 내 도서관/아카이브다.
여기에 온 이유는 우선 카페는 가기 싫고, 집에서는 작업이 되지 않아서이다.
들어오니 내가 첫 방문자인듯했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도서관. 좋은 책들이 잘 큐레이션 되어있었다.
오늘 이곳에 비단 책을 읽으러 온 것이 아니다.
잡 어플라이를 위해서 왔기 때문에, 원래의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기 위해서 노트북을 꺼내었다.
몸 풀기로 총 3개의 회사에 지원하고 나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제야 나는 공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작가들의 인터뷰와 작품을 보고 있자니, 그들의 세계는 참 심오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갈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평소에 사물에 대한 Why에 대한 생각이나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공간이 주는 고요함과 정숙함이 좋았다. 3시간의 시간제한이 아쉽기만 하다.
다섯 시에 나와서 해가 질 때쯤 근처 분식집을 도착해서 오들오들 떨면서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현타가 왔다.
내가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나.
예전에는 혼자 다니는 것이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뭔가 혼자 잘한다는 것에 대한 프라이드까지 있었는데,
돌아보면 정말 좋았던 기억들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했을 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시간들도 혼자보다는 같이 했을 때 배가 된 단것도 알게 되었다.
함께 웃고 감정을 공유하며, 서로의 생각들을 공유하는 것. 함께 보고, 맛보고 즐기면서 경험하는 것.
시간이 떠서 근처 카페 '가배도'에 들어왔다. 며칠 전 코엑스 가배도에 갔는데 커피 맛이 좋아서 삼청점을 찾았다. 사실 요즘 입맛이 그다지 없어서 양이 작은 코르타도를 주문했다. 씁쓸한 코르타도를 좋아하지만 이곳은 달달한 코르타도를 내주었다. 디저트 겸해서 남기지 않고 마신다.
마지막 행선지는 옥수역이다. 영화 모임이 있어서 오늘도 새로운 아이디어 교류를 하기를 기대하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