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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FAC Jan 19. 2022

경이로운 몸의 동작

볼쇼의 발레단: 백조의 호수

나는 한 때 발레를 전공해서 예고에 진학을 했었다. 지금은 사정으로 발레계를 영영 떠났지만 발레에 대한 사랑은 여전해서 매년 기회가 되면 발레 공연을 챙겨 봤었다. 가장 좋아하는 발레 레퍼토리는 '지젤'과 '백조의 호수', 그리고 '호두까기 인형'이 있다. 


그중에도 오늘은 메가박스에서 영상으로 볼 수 있었던 볼쇼이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의 리뷰를 하려고 한다. 백조의 호수는 발레 레퍼토리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 있는 레퍼토리 중에 하나라고 꼽힌다. 절제와 칼군무 그리고 테크닉이 전부 필요한 발레 레퍼토리다. 

볼쇼이 발레단과의 연이 있는데, 예고 재학 시절에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으로 연수를 간 적이 있다.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것은 발레 연습실 바닥이 경사져있다는 점과, 음악을 트는 것이 아니라 피아니스트가 직접 반주를 쳐준다는 점이었다. 반주를 라이브로 들으면서 춤을 추는 건 MR과는 하늘과 땅 차이었다. 


발레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직접 경험을 해본 나 같은 경우에는 어떤 한 동작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 알기 때문에 마냥 즐기지는 못하지만 그렇기에 더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발레는 신체를 이용한 가장 아름다운 동작들이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탄생된다. 요즘 같이 미디어 속 가벼운 말들로 소비되는 시대에 이렇게 음악과 몸의 동작만으로 관객들을 집중시키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영화관에서 핸드폰을 꺼두고 오롯이 음악, 아름다운 몸의 움직임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었다. 


백조의 호수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를 먼저 소개하고 싶다. 뒤에는 순백의 백조들이 사선으로 열을 맞춰서 서있고 그 앞에서 백조 오데트(여자 주인공)와 지그프리트 왕자(남자 주인공)가 파드되를 추는 장면이다. 어두운 조명, 깊은 숲 속 배경, 가녀리지만 강렬한 음악 선율, 그리고 순백의 백조들과 그 가운데 절제되었지만 감정이 넘쳐나는 오데트와 왕자의 춤은 강렬하면서도 전율이 돋을 정도로 신비롭다. 지극히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황홀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음은 백조들의 첫 등장 씬. 기괴하면서도 신비로운 이 장면은 파란 조명이 효과를 극대화해준다. 양 팔을 이용한 빠르게 파닥이는 동작은 마치 백조들의 날갯짓하는 형상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백조의 호수 중 백미 중 하나는 이렇게 순백의 백조들이 줄을 서서 칼군무를 하는 장면들이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고, 손동작 발동작 턱의 각도까지 통일된 그들을 보고 있으면 연습량이 저절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번 레퍼토리에서 주역을 맡은 올가 스미노바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특히나 그녀의 폴드 브라(상체)에 놀랐는데, 강인함과 야리야리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팔이 정말 길고 가녀렸다. 백조의 호수에 특이점은 여자 주인공 파트가 1인 2역을 맡는다는 점이다. 스미노바의 백조는 미친 듯 가녀렸는데, 흑조는 너무나도 강렬한 팜므파탈로 돌변해서 보는 내내 소름이 쫙 끼쳤다. 


흑조는 강렬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소유하고 있는 캐릭터다. 아름다우면서도 힘이 넘치며 거침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흑조 파트는 바로 흑조 솔로 무대.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휏떼(한발로 도는 동작)를 무려 34바퀴 해내야 하는 고도의 테크닉이 필수적이다. 올가 또한 이 관문을 피할 수 없었는데, 그녀 특유의 카리스마로 매력적이면서도 강렬한 동작을 보여줬고 관객의 브라보를 탄생시켰다. 


주인공들의 파드되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이렇게 오딜이 옆으로 돌아서서 아라베스크(다리를 뒤로 들어 올리는 동작)를 하는 장면이다. 그녀는 어깨를 뒤로 젖히고 거침없이 왕자를 유혹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이 온몸을 다해서 춤추며 한 남자를 유혹하면 안 넘어갈 남자가 있을까? 단언컨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발레를 감상하며, 스토리와 몸의 움직임에 푹 빠져서 감상을 했다. 유독 나는 판타지스러운 발레 레퍼토리를 즐겨 보는데 그 순간만큼은 현실에서 잠시 떠나서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하고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에 푹 빠지는 기분이 좋다. 발레가 생소한 사람들도 이렇게 새로운 예술을 감상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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