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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FAC Dec 06. 2022

버리는 게 남는 것

새 옷장을 구매하고.



옷장을 새로 구매했다. 거의 10년은 족히 가지고 다녔던 하얀색 옷장 두통.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성격이라

망가지기 전까지는 옷이든 가구든 사용하는 편이다. 그러다 얼마 전 엄마가 옷장을 새로 바꿔주셨다. 너무 오래되었다며 문고리도 다 떨어져서 못쓴다고 하셨다. 그렇게 까사미아 장롱 두 통을 구매했는데 세일 기간이라 20% 할인을 받았다. 


옷장도 샀겠다 옷장이 도착하는 날 대대적인 방 정리를 하기로 했다. 엄마는 정리 자격증이 있어서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진짜 다르긴 한 게 나는 그냥 느낌대로 넣는 스타일이라면 엄마는 효율적으로 정리하는 스타일이었다. 먼저 옷 정리를 싹 했다. 안 입는 옷들과 정만 있는 옷들은 싹 버리고 1년 내 한 번이라도 입은 옷들만 남겨뒀다. 낡거나 해진 옷들도 이참에 정리했다. 


그렇게 조금씩 짐을 줄여가니까 왠지 모르게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옷을 일차적으로 정리하니까 하루가 다 가버렸고 허리는 아파와서 그날 잠을 설쳤다. 일요일에 2차적으로 방 정리를 시작했는데 먼저 화장대 서랍장을 싹 비워서 정리를 했더니 짐이 많이 줄어서 수납을 넉넉히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침대 밑에 있던 잡동사니와 창고에 있던 물건들을 다 끄집어내서 정리하다가 박스 2개가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와 아빠 둘 다 안 치웠다고 했는데 내가 가장 아끼던 사진 박스와 다이어리 박스가 없어져서 나는 멘탈이 나갔다.


앞 뒤 안 보고 성질을 부리다가 집안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었고 결국 저녁을 먹다가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혹시나 하고 쌓인 책들 뒤를 보니까 거기에 두 박스가 놓여있었다. 이렇게나 내가 물건에 애착이 많았는지 다시 알게 되었고 나 자신에 대해 또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왜 그렇게 사진과 일기장에 집착할까? 사실 잘 꺼내어 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그 시절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게 나는 좋다. 


하지만 확실히 세월이 지나면서 짐이 점점 늘어나니까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한 때는 원래 큰 일기장을 좋아했는데 크기를 줄여보기도 했고 인터넷에 써보기도 했는데 결국 다시 일기장으로 돌아갔다. 이렇듯이 뭔가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잃을 것도 많고 챙길 것도 많아진다. 그게 돈이든 물건이든 마찬가지다. 그래서 문득 뭔가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정말 필요한 것만 구매하자고. 정말 소중한 것만 보관하자고.


화장대를 정리하면서도 정말 오래된 화장품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피부에도 좋지 않을 텐데 단지 사용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냥 오래된 화장품을 쓰고 있었다. 다른 물건도 마찬가지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쟁여둔 물건들이 참 많았다. 그것들을 이번에 정리하면서 많이 떠나보냈다. 하지만 내가 계속 모아둔 손편지들은 차마 버릴 수 없었다. 다시 봐도 좋은 손편지들은 어쩌면 가장 소중한 나의 물건들 중 하나다. 그래서 요즘은 손 편지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 선물을 받더라도 손 편지가 있는 선물과 없을 때는 기분이 달라진다. 어제도 오랜만에 손 편지를 받았는데 역시 좋았다. 손글씨에는 말보다 진한 힘이 있는 듯하다. 


이번에 정리를 계기로 참 나는 #기록 이 참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글 둘 다 기록의 형태이니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과거는 떠나보내고 현재와 미래를 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거도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에 소중하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고 진짜는 현재, 지금이니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지금 내게 일어나는 일들, 내가 하고 있는 것들에 더 나의 에너지를 쏟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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