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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FAC Feb 14. 2019

PR AE로 살기 -3

첫 고비

나는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겁도 없이 지르고 보는 성격이 있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홍보나 PR에 대해서 거의 문외한인 내가 PR AE 경력직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과연 좋은 초이스였을까? 오늘 내게 첫 고비가 왔다.


여자들의 기분이 최고로 안 좋은 그날 이틀째.

살면서 이날의 피를? 많이 보았다. 그 말인즉슨 이 날에 어그러지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많이 했다는 뜻이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직장에 다닌 지 어언 3주 차.

어제는 밤늦게 끝나서 인근에 사는 언니 집에 묵기로 했다. 어쩌면 그것도 아주 큰 메리트 인지도 모르겠다. 단 15분 거리니.


오랜만에 언니 집에 가서 씻고 나서 회사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를 다독이기보다는 엄청나게 깨졌다. 워낙에 우리 집안이 객관적이기도 하지만 너무 뼈아픈 소리를 하니까 마음이 아팠다. 다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말들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그렇게 하면 잘릴 거라는 말이.. 내가 정말 능력이 없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밑의 아이들을 잘 다스리고 윗사람들의 눈치를 빠르게 캐치하는 것이 나의 포지션이다. 정말 다 잘해야 하는 그 부담스러운 느낌.


다른 걸 떠나서 그때부터 배가 살살 아파왔다. 잠은 조카들이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아기방 침대 위에서 잤다.

창문 바로 옆이라 그런지 찬 바람이 으슬으슬 들어오고

추웠다.. 그런데 다른 데서는 잘 곳이 없어서 버티다가 잠을 계속 설쳤다. 조카 은우는 새벽에 세 번이나 깨서 울며 밥투정을 부렸고 인서도 한번 잠꼬대를 심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잠을 완전히 설쳤다. 중간에는 구역질이 나서 토를 하러 갔는데 토는 나오지도 않았다.


해서 아침이 밝아왔고 컨디션은 -200. 한참을 아픈 배를 움켜쥐고 뒹굴 거리다가 마침내 일어나 얼굴을 씻었다. 식욕도 없고 또 토 할 것 같아 변기와 한 차례의 씨름을 했다.

그러구 나서 옷을 갈아입고 택시를 타고 회사에 10분 늦게 도착. 여간 나아지지 않는 상황.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필요한 말들만 했다.

잠시 편의점에 가서 따뜻한 꿀물을 사 왔다. 바나나도 샀다. 약을 먹으려면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하지만 먹자마자 속이 부대꼈다. 그래서 일단 꿀물만 먹고 간신히 버티다가 점심시간 전에 휴게실에 쓰러져버렸다. 휴게실도 으슬으실해서 더 안 좋아질 것 같아 인근 이비인후과에 갔다. 가서 수액과 진통제를 같이 맞았다. 2시간 동안 따뜻하고 조용한 곳에서 잠을 자니 그것만 해도 나아지는 것 같았다. 일어나니까 훨씬 몸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돌아가니 거의 세시가 되었고 역시나 업무가 잔뜩 밀려 있었다. 그래도 몸이 나아져서 그런지 식욕이 돌아서 호박죽을 데워 먹었다. 다은(신입) 이 아프다고 죽을 사다 줘서 또 순간 감동했다. 그렇게 일을 하나하나 마무리하며 처냈다. 나도 오늘 기획 하나를 한 시간 반 만에 했는데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영 손에 안 잡혔다. 컴퓨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빨리 이사나 갔으면 좋겠다! 넓게 일할 수 있게.

그래도 오늘 무사히 잘 처리된 업무들도 있고 뭔가 뿌듯했던 날이다.


이지수 에디터

jlee@lofa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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