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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굳은살

2310042213

by 로파이
portra_북아현동_북성초등학교 내려와 우회전길.JPG


굳이 왜?

내가 브런치 작가 도전을 지속하는 걸까?

글을 또 왜 쓰는 것이고?


수차례 작가 신청에 낙방했지만 그간 딱의 의미 없는 글들을 꾸준하게 계속해서 적어왔기에

모니터 텍스트 커서의 깜빡임이 그다지 어색하지만은 않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을 때

나는 노트에 내가 느끼는 감정의 글을 처음 옮겨 적기 시작했다.


대체적으로 지나온 삶에 대한 회상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삶에 무슨 긴 사연의 회상이 있겠냐만은

다소 평범하지 않았던 순간이 많았기도 했고 그 시절의 원망 혹은 분노에 대한 감정을

잊지 않으려고 기억을 씹고 또 씹어 그 감정을 노트에 꾹꾹 눌러 적었다.


portra_북아현동 209-34호 내가 살던 옥탑방.JPG


나는 주로 이른 새벽에 글을 썼다.

당시 내 방은 골목 가로등이 비치는 방이었는데,

밤새 내 방과 골목을 비추던 가로등이 꺼지고 동이 트기 전 새벽의 시간은 항상 설렘이었다.


아침이 올 때 즈음 옥상에 올라가

저 멀리 남산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두운 남색 그리고 짙은 파란색 붉게 물든 주황으로

아침이 밝아 오고 있음을 하늘이 알려주었다.


세상이 어찌나 고요하던지 새소리마저도 나지 않을 그 잠시 찰나의 시간과

크고 깊게 숨을 들이켜던 그 이른 새벽의 공기는 아직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새벽이 주는 공기의 냄새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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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가 불분명한 음악을 몇 시간이고 반복하며 들었다.

옛 기억과 삶의 불공평함에 숨죽여 울어가며 내 기억 속 대상의 원망을

몇 날 몇 달 그리고 몇 년을 되풀이했는지도 모르겠다.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감정들을 글로 적어 내려가며, 더욱더 또렷하게 기억해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했던 내 감정의 글이 아마도 내 첫 글로 기억한다.


분명

누군가 내 살아온 과정의 하찮은 글이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위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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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브런치 낙방을 거듭하며 쌓인 내 서랍에 수많은 글 중 오래 묵혀있던 글이었다.


내가 어떤 연유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한 스스로 질문을 하다가 잊지 않으려

적어놓은 글이 마침 생각이 났다.


당시에 다 적어놓고 막상 읽어보니 가슴에 돌을 얹어놓은 듯 한 기분이 들어 그냥 닫아버렸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무거운 감정이 누군가에게 묻을까 옮을까 했다.


오늘 마음에게 물었다.


- 지금은 좀 어때?


글쎄? 이제는 누군가에 대한 증오나 원망은 점차 색을 잃어가는 것 같아

감정이 전부 완벽하게 사그라들었다고 하긴 어렵겠지만

자주 쓰는 손가락에 굳은살 배기듯 아픈 마음을 자주 쓰니 굳은살이 배긴 마음의 무딤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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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나는 왜 글을 지속하는 걸까?


실은 자서전을 쓰고 싶었어

예전에 우리 아버지 역할을 대신해주신 목사님께서 그러셨거든


"네 인생은 참 평범치 않았지? 목사님은 그래도 네가 참 바르게 자랐다고 생각해"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누군가를 위해 네 이야기의 자서전을 써보는 게 어떨까?"


그래서 아직도

조각이 난 기억을 더듬어 생각이 날 때마다 파편을 적어두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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