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다 끝나갑니다.
사진을 벌써 15년 이상을 찍었더라고요
취미라곤 전혀 없던 내가 처음 디지털카메라를 구매해서 어찌나 신이 나서 사진을 찍었던지.
꽃이며. 풀이며.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과
움직이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모든 것들을 찍었더라지요
꼭 이상하게 행복하면 불행이 뒤를 따라오더라고요
우유가 담긴 커피잔에 빠뜨리는 사고가 발생해 쓸 수 없을 만큼 고장이 나버려서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모든 것에 빠르게 흥미를 잃어갔고
다시 무채색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안타까웠는지
당시 제 여자친구분께서 필름카메라를 잠시 빌려주셨어요
처음 만져보는 물건
필름을 생전 써본 적이 없던 저는
이리저리 만져가며 눌러가며 사용방법을 알아가고
인터넷에서 매뉴얼을 찾아 정독도 하고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면서 질문도 해 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지식을 쌓아가며
사진에 실패를 하기도 하고 또 우연찮게 잘 건진 사진 하나에
어린아이처럼 환호를 지르기도 했답니다.
필름이 주는 매력은.
36방의 사진을 다 찍을 때까지 결코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내가 무엇을 찍었는지. 어떻게 찍었는지. 누구를 찍었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 상황이 무척이나 낯설었어요
하지만
필름을 사진관에 맡기고 현상과 스캔을 받아보는 순간
내 폴더 안에 보물상자를 열어보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제 글 중에 "사진에도 감정이 담겨있음"이라는
브런치북의 이름은 이때 제가 느꼈던 사진으로 느껴지는 제 감정을 기록하고 싶었거든요
한동안 인물 사진을 잘 찍지를 않았어요
인물 사진을 못 찍어서가 아니라 무척 좋아하는데 찍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 맞겠네요
저는 한번 작업을 거친 사진은 잘 지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두는 성격이라.
그 시절 사람에 크게 상처받은 이후로 도저히 사람을 인물을
제 지울 수 없는 폴더에 다시 담아둔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다시 상처받을 수 있잖아요.
정말 많이 무서웠거든요.
그랬던 제가 어떤 감정 변화로 인물 사진을 찍게 되고.
최근 직원 결혼식 가서 오랜만에 허락하지 않은 스냅 촬영까지 했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긴 합니다.
또 상처가 되겠지요
또 인물을 찍지 않게 되겠지요
사람이 겁이나고. 많이 무서워요
하지만 언젠가 또다시 용기내어 찍을 날이 오겠지요
사진 참 쉽지 않습니다.
사람 참 쉽지 않습니다.
사랑 참 쉽지 않습니다.
할 말이 다 끝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