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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원하였습니다.

할 말이 다 끝나갑니다.

by 로파이


제게 귀한 카메라를 빌려주신 작가님이 계세요

그분은 지하 사무실에 방음 부스를 설치하시고는 때로는 음악도 하시고 사진도 찍으시는 분이셨지요


가끔 놀러 가서 작가님의 사진을 보면

인물 사진은 이상하게 빼놓지 않고 늘 인물의 등을 찍으셨어요


"작가님은 왜 앞이 아니라 등을 저렇게 찍으세요?"

- 등? 무슨 등?


"저기요 저기 사진들 다 뒷모습만 전시하셨잖아요"

- 아. 저거



- 태민이 너는 사랑하는 사람이랑 헤어질 때 뒤를 돌아보는 편이야?

"예 그렇죠 아무래도 보통 바라보죠? 금세 또 보고 싶으니까?"


- 그럼 서로 마주 보는 일이 생기지? 그건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겠지만

- 짝사랑 또는 외사랑 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마주 보기보다 상대의 뒷모습만 보게 되는 일이 많겠지

- 나를 바라봐 주지 않으니 늘 뒷모습만 볼 수밖에 없잖아


- 내게는 그런 피사체에 대한 짝사랑. 외사랑 같은 거지

- 그리고 내 등을 볼 수 있는 경험이 많지 않잖아? 그래서 기억해 두자라는 의미??



그러시고는 작가님은 제게 아끼는 카메라를 빌려주셨어요.

정말 잊을 수 없는 귀하고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저는 온전히 필름카메라의 세계로 들어갔던 것 같아요

셔터 한번. 사진 한 장의 소중함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비록 제가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정말 온 마음을 담아 모든 사진을 찍었어요.



제가 온전히 그분께 그 마음을 받았기 때문에

저는 본인의 카메라를 상대에게 빌려준다는 의미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셔터 한 번과 사진 한 장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는 의미

내 도구를 통해 내가 아닌 네 행복이 가득 채워졌으면 한다는 의미


추억이 되고

기억이 되길 바라는 깊은 염원이라고 해야 할까요


나는 누군가의 행복을 이렇게 깊게 바라본 적이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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