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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Jul 28. 2020

내가 남의 집에 가는 이유

퇴근 후 떠나는 남의 집 여행, 궁금하지 않으세요?

나 : 나 내일 남의 집에 간다!
J : 누구? 아는 사람 집에 놀러 가는 거야?
나 : 아니, 모르는 사람.
J : 모르는 사람 집에 간다고? 왜?
나 : 얘기하러!
J : 모르는 사람 집에 얘기를 하러 간다고?
나 : 응!


친한 친구 J와의 대화. J뿐만 아니라 내가 남의 집에 간다고 하면 늘 이런 반응들이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왜? 뭐하러? 불편하지 않아?


맞다, 처음에는 불편했다. 걱정됐다. 낯설었다. 어색했다. (심지어 나는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근데 이제는 즐긴다. 물론 처음부터 어색하지 않다.. 면 거짓말이지만 금세 익숙해진다. 점점 즐기게 된다.

왜냐, 나에게 남의 집은 이제 새로운 여행지니까!


"남의 집 프로젝트란?"
가정집 거실에서 취향과 공간을 공유하는 거실형 에어비앤비, 쉽게 말해 취향이 맞는 사람들이 남의 집 거실로 놀러 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거실 플랫폼이다. 다양한 주제들이 진행되며 자신이 원하는 남의 집에 신청서를 제출해 방문할 수 있다.
https://naamezip.com


세상 친하게 이야기 나누지만 서로 연락처는 묻지 않는 쿨함, 꼭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나의 모순적인 니즈를 충족시켜 준 남의 집"

작년 봄, 조금은 긴 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여행병에 걸렸다. 일을 하고 있어도 손에 잡히지 않고 여행 사진만 보며 그리워하고 우울해하고 그렇다고 다시 떠날 수도 없는 현실에 슬퍼하며.

그러다 보니 계속 다른 쪽으로 눈이 돌아갔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물론 다양한 어플이나 인터넷을 통해 동호회나 취미가 같은 모임들도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깊이 있게 누군가와 관계를 만들거나 길게 에너지를 쏟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조금은 부담스럽고 지쳐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저 여행지에서 만나 맥주를 마시며 밤새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날이 되면 서로 일정에 맞춰 쿨하게 헤어지는. 다음에 인연이 되면 또 만나자며 인사하는 그런 사이를 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순적인' 모임을 가고 싶었다. '모임'이라고 하면 인맥을 만들고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가 우연히 남의 집 프로젝트 홍보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모르는 사람들과 여행 취향을 나누고 싶은 낯선 당신을 초대합니다!"

그렇게 처음 다녀온 남의 집이 "남의 집 마그넷"이었다.

그동안 여행을 다니며 추억거리로 그 도시의 마그넷을 모으고는 했다. 조금의 무게라도 줄이기 위해 가져 갔던 물티슈도 초반에 다 써버렸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마그넷만은 고이 싸서 끝까지 걸었을 정도니 말이다.

여행병에 걸려 무료하게 인스타를 보던 나에게, '마그넷'과 '여행'이라는 단어는 낯을 가리고 겁이 많은 나를 남의 집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남의 집 프로젝트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던 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남의 집 마그넷'에 신청서를 적고 결제를 누르고 있었다. 


초대가 확정된 뒤 걱정이 밀려왔다. '요새 세상이 험한데 괜찮을까?' '이상한 사람들이 오면 어떡하지?' '모르는 사람 집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는다니... 내 성격에 괜찮을까?' 그렇지만 그런 수많은 걱정들보다 왠지 모를 설렘과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에 기대감이 커졌다. 꼭 새로운 여행지의 게스트 하우스에 가는 듯이.


그렇게 남의 집에 방문하는 날이 되었다.

한강이 보이던 마그넷이 가득했던 집. 곳곳에 여행을 좋아하는 호스트 분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었다.

남의 집의 경험이 있던 호스트 분은 친절하고 따뜻했고, 함께했던 게스트 분들은 모두 유쾌했다. 여행과 마그넷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였을까, 모두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친해졌다. 나의 이야기를 세상 즐겁게 들어주던 눈빛들, 다른 이의 여행을 꼭 함께 하는 듯했던 기분. 어색했던 공기가 가득했던 공간은 어느새 맛있는 음식들과 행복한 이야기 소리만 가득해졌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행복했다. 꼭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여행지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며 처음 만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때처럼.


그렇게 나의 첫 남의 집 방문은 성공적이었다.

이후 나는 남의 집을 심심하면 방문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다섯 번의 다른 주제의 남의 집을 더 방문했고 모든 남이 집은 즐거웠고 새로웠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이들에게도 남의 집을 추천한다. 특히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내가 남의 집을 계속 가는 이유,

다른 이의 생활공간에 간다는 것, 아주 새롭고 즐거운 일이다. 어린 시절 친구의 집에 놀러 간다는 것은 나에게 그 친구와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남의 집'의 방문은 모르는 사람의 집에 가는 것이지만 내가 그 사람의 집에 방문한다는 것. '집'이라는 매우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은 그것만으로도 나의 마음, 그 사람의 마음을 열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순간만큼은 절친한 사이가 된 것이니까.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온전히 그 순간 그 이야기만 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아무리 같은 관심사를 가진 동호회라 하더라도 그 관계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나에 대해 알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주가 되기 마련이다. 그 속에서 생기는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불편함이 없다. 깔끔하다. (물론 남의 집이 끝난 후 마음이 잘 맞아 연락처를 교환하고 계속 인연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사실 내가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발성이다. 여행지에서 만나 계속 연락하고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과 쉽게 더 친해지고 속마음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단발성 때문이지 않나 싶다. 다시 볼리 없는 사람, 이해관계없는 사람, 나의 숨겨둔 본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줘도 부담 없는 사람. 때문에 늘 다른 이에게 맞추고 괜찮다를 입에 달고 살았던 나에게는 더없이 좋았다. 

가성비, 가심비가 좋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을 때. 3-4만원의 돈으로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퇴근 후 또는 주말에 낯선 곳으로 떠날 수 있다는 장점 말이다. 남의 집에 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여행이라 하기 충분하니까.

그리고 처음 남의 집으로 갔던 주제는 '여행'이었지만 그 이후 방문한 남의 집의 주제는 다양했다. 그림책, 방구석 콘서트, 씨앗 이야기, 싱잉볼 등등. 관심 있고 궁금했지만 쉽게 경험하지 못했던 주제나 한번쯤 해보고 싶었던 다양한 주제들이 남의 집에는 가득해 새로웠다.


그래서 나는 남의 집으로 여행을 간다.

늘 남의 집을 방문할 때면 나도 나중에는 호스트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지금은 남의 집 게스트로도 무척 만족하기에!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다양한 남의 집으로 계속 여행을 다닐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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