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몽파르나스역에서 8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예약해놓았기 때문에 숙소에서 7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긴장과 떨림, 그리고 설렘
중요한 시험을 보러 가는 것처럼 떨려서 아침도 거의 다 남겼다. 뭐든 먹으면 체할 것 같아 우유만 벌컥벌컥 마시는 나에게, 주인아주머니는 걱정이 되셨는지 기차 안에서 먹으라며 주먹밥과 샌드위치를 싸 주셨다.
왼쪽 열차가 나를 생장으로 데려다 줄 열차!
아주머니의 응원과 배웅을 받으며 몽파르나스 역으로 출발! 월요일 아침이라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수월하게 출발 30분 전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무료히 쳐다보다 보니 나를 생장으로 데려다 줄 열차가 도착했고, 드디어 열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열차에 올라 자리에 앉고, 긴장을 풀며 아주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먹었다. 아까는 그렇게 입에 들어가지 않더니, 기차를 탔다고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정말 맛있었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싹 다 먹었으니 말이다.
도시락을 다 먹은 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예쁜 풍경들. 전형적인 유럽의 시골 풍경들이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아무 걱정이 들지 않았다. 이제 정말 시작이라는 생각에.
이렇게 첫 발을 무사히 뗐으니 생장에 도착해서 걸을 일만 남았다는 생각, 이제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과 기분 좋은 설렘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운명적인 만남도 기차에서 시작되었다.
생장으로 가는 기차에서, 배낭을 멘 한국인들을 많이 만날 거라고 이야기를 들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었는데 기차를 타기 전까지 한 명도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뭐 누구를 만나려고 온 곳은 아니니까...' 하며 자리에 앉아있는데, 바로 앞자리에 한국인 두 분이 앉으시는 것 아닌가. 차림새는 산티아고 복장(?)이 맞으셨는데, 의자 사이로 슬쩍 쳐다보니 노트북을 가지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시기에 '아.. 산티아고에 가시는 분들은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설마 산티아고에 노트북을 들고 가실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니 (엿들으려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뒷자리라 그냥 들렸다...) 생장에 가시는 분들이었다! 처음 보는 한국인 순례자에 정말 반가웠지만, 그렇다고 "저 한국인이에요!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할 수도 없고 그저 모른 척 창밖을 보다 바욘에 도착하게 되었다.
나는 기차 티켓을 어플로 예약을 해 놓아서 핸드폰으로 바로 플랫폼을 확인 후 이동하였는데, 기차에 앉아있으니 5분 뒤 플랫폼을 늦게 확인하신 그 앞에 분들이 생장으로 가는 기차 바로 옆 자리에 앉으시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 그분들은 내가 한국인인지, 순례자 인지도 모르시는 상황이기에 그저 희미한 미소를 띠고 멍하니 앉아있었는데... 그분들이 말을 걸어주셨다. "한국분이신가 봐요."
한국을 떠나기 전, 이것저것 준비하며 산티아고에 꼭 가지고 가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바로 태극기 뱃지!
태극기까지는 힘들더라도 나는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기에 나름의 용기로 배낭에 달 태극기 뱃지를 준비해 갔던 것인데, 나중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도 아주 도움이 되었다. 길을 걸으면 서양인들과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인사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동양인들끼리는 인사하기가 참 어려웠다. 한눈에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상황에서 영어로 인사하기도.. 그렇다고 한국말을 내뱉기도.. 서로 애매해하다가 늘 목인사와 눈인사만 했었는데, 배낭에 태극기 뱃지를 달고 있으면 한국분들이 먼저 인사해주셔서 아주 감사하고 반가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태극기 뱃지 덕분에 생장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나의 첫 동행인 J언니와 Y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만난 한국인 순례자이기에 이것저것 서로 정보도 공유하며 생장까지 가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인연은 나의 첫 동행임과 동시에 순례길 내내 많은 의지를 하였던 사람들을 만난 감사한 순간이었다.
드디어 생장에 도착,
나의 첫 동행, 세계여행 중인 언니들
생장에 도착하니 자신의 몸만 한 배낭을 멘 사람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와 언니들도 함께 사람들을 따라가니 도착한 생장 사무실.
사무실은 문이 닫혀있었다..
도착 시간이 1시였는데, 1시 30분에 다시 문을 연다면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는 다른 순례자들이 이야기를 해 주어서 일단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근데... 사무실 주변 음식점이 문을 다 닫은 것이다.. 그냥 1시 30분까지 기다리다가 숙소에 들어가서 먹을까, 하다가 너무 배고픈 나머지 계속 계속 길 밑으로 내려가며 레스토랑을 찾았고 겨우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있었다.순례길에서 처음으로 가게 된 레스토랑이었는데, 이 곳에서부터 벌써 내가 순례자가 된 듯한 환영을 받으며 가성비 좋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정말 맛있어서 저녁을 안 먹어도 될 정도로 양껏 먹었던 기억이 있다 :)
생장 사무실의 풍경
1시 30분이 되고 드디어 들어가게 된 생장 사무실. 너무나 따뜻하게 환대해주는 직원들 덕분에 꼭 와봤던 사람처럼 사무실이 정겨웠고 설레었다. 순례자 여권을 받고, 직접 첫 도장을 찍고, 프랑스 길에 대한 안내를 들었다. 고도표와 여권을 받으니 정말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출발하는 날은 4월 2일이었는데, 피레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루트는 당연히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폴레옹 루트는 4월부터 열리지만 실제로도 날씨 때문에 4월 중순까지 금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칼로스 길을 준비해왔는데 내일은 나폴레옹 루트가 열린다는 것이다! 이런 행운이!!! 심지어 4월 3일에는 눈 예보가 있어서 그 이후에는 나폴레옹 루트가 금지될 거라는 이야기에 원래 생장에서 1박을 더 하려던 언니들도 내일 함께 출발을 하기로 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졌다.
출발부터 좋은 인연들을 만나고, 기대하지 않았던 나폴레옹 루트를 갈 수 있게 되었음에. 모든 것이 순조로운 이 상황이, 꼭 산티아고가 나를 불러준 것만 같아서. 정말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동안 바보처럼 걱정만 하던 나에게 '걱정하지 마, 너는 잘할 수 있어.'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서!
너무나 아름다웠던 생장
생장 사무실을 나온 뒤 언니들과 함께 첫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조금 쉬다가 나와, 순례길 이후 일정의 짐은 산티아고로 보내고 내일 피레네 산맥을 위해 배낭도 동키 신청을 하였다. 짐을 보내고 나오니 오후 기차를 타고 이제야 생장에 도착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뜬금없이 왜 오후 기차 사람들 이야기를 하느냐.. 이때 그저 스쳐간 사람들이 길을 걸으며 모두 친해지고 인연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을을 둘러보며 찍은 사진 속에 나중에 일행이 된 사람들이 있었고, 그것을 나중에 알게 되며 참 산티아고는 재미있는 곳이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짐을 보낸 후 나는 마을을 둘러보았다. 첫 마을 생장,
정말 아름다웠다.
내일 순례길을 시작한다는 설렘과 걱정을 다 날려버릴 정도로, 아니 내가 순례길을 걷는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생장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위안이 되는 곳이었다. 일정만 된다면 며칠을 묵으며 멍하니 바라보고 싶은 곳. 이러한 생장의 모습도 꼭 나에게 용기를 주는 것만 같아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