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로 향하는 다양한 길들 중, 내가 선택한 프랑스 길. 프랑스 길은 가장 대중적이고, 산티아고를 처음 가는 사람들에게 많이 추천하는 길이기에 선택하게 되었다.
프랑스 길의 시작점인 생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중에서 나는 파리 몽파르나스에서 TGV를 타고 바욘을 거쳐 생장으로 가기로 했고, 이러한 일정으로 파리에서는 3일 정도 머물게 되었다.
파리는 3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하며 거쳐갔던 곳이기에이번에는 여행보다는 시차 적응 겸 쉬는 것으로 파리에서의 시간을 계획했고,그저 예전에 가보지 못해 아쉬웠던 지베르니 투어만을 예약하고 한인민박에서 머물게 되었다.
"산티아고라니! 그곳에 왜 가는데?"
라는 질문을 여기서도 받게 되다니... 그렇게 나는 한인민박에서 '특이한' 사람이 되었다.
한인민박에 묵게 되면 서로 하게 되는 '유럽에는 어떻게 오셨어요?' '얼마나 계세요?' '파리 다음에는 어디로 가세요?'라는 필수적인(?) 질문들을 주고받다가,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기 위해 파리에 왔다고 하니 저 질문을 또 듣게 되었다. 그리고 한인민박에 묵는 모든 손님들이 나의 일정에 대해 알게 되었다...ㅋㅋㅋ
한국에서는 아직 산티아고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이런 질문이 익숙했고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스페인 하숙이 첫 방송된 다음날 출국했기에 준비하는 동안에는 산티아고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알지 못했다.) 그런데 파리에서까지 이런 질문을, 그것도 파리에 거주하시는 주인아주머니께서 물으시니 조금 위축이 되었다. 혼자 산티아고에 간다고 온 내가 신기하셨는지, 식사를 할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신 터. 때문에 다른 방에 묵는 분들까지 나에 대해 궁금(?)해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아니... 내가 가보고 싶다는데 왜 이렇게들 걱정하는 거야, 여자 혼자서 가면 안 되는 건가? 유럽 여행도 혼자서 많이 오잖아. 왜 이렇게 걱정 어린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거지?'
남들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나로서는 그저 호기심에 던진 말 한마디에도 위축이 되었고 속상해졌다.
아마도... 티 내고 싶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마음속 조금의 불안함을 갖고 있던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긴 여정의 첫 발을 내딘 것과 다름없는 파리에서 이런 질문을 또다시 듣게 되니,
불안함이 더 증폭되었나 보다.
결국 나는 너무나 기대하던 지베르니 투어에서도, 다시 마주한 에펠탑 앞에서도,파리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름다움을 마주쳐도 행복함은 그저 한순간이었고시간이 지날수록 걱정만 앞서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너무 패기만 넘쳤던 것은 아닐까? 그냥 한 달 동안 유럽 여행이나 할 걸, 아니 가보고 싶었던 다른 곳에나 여행 갈걸,
어쩔 수 없어. 나는 이제 산티아고에 가야 해.아니, 어쩔 수 없이라니? 내가 가고 싶어서 내 발로 온 곳이잖아.'하는 끝없는 걱정과 후회가 뒤섞여 파리에서의 시간을 즐기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답답하기 그지없다... 짐을 싸면서도 미리 걱정하지 말자며, 걱정을 버리자며!
그 먼 곳에 가서, 내가 좋아하던 파리에 가서 일분일초를 즐기지는 못할망정 걱정에 골머리를 썩히다니...
근데 사람이 또 웃긴 게,
이러한 걱정은 그 걱정을 주셨던 주인아주머니의 말 한마디에 끝이 나버렸다.
"정말 부럽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내 버킷리스트야. 나는 언제쯤 가볼 수 있을까?"
어느 저녁, 모두 야경을 보기 위해 나가고 다음 날 생장으로 일찍 출발해야 하는 나는 숙소에서 쉬고 있었다.
그렇게 성사된 아주머니와의 맥주 타임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 아주머니는 독실한 신자셨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서도 잘 아시는 분이셨던 것이다. 그러다 신자도 아닌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혼자 간다고 하니 그저 신기한 마음에 질문을 하셨던 것인데.나의 마음속 불안함이 그 질문을 어긋나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걱정을 키웠던 것이다.
이 날, 아주머니의 말은 나에게 큰 용기가 되었다.
"너는 누군가가 평생 동안 갖고 있는 버킷리스트를 도전하는 사람이야, 정말 대단해!"
아주머니의 순수한 궁금증을 어긋나게 받아들여, 파리에 있는 내내 고민하던 내 모습이 무색하게나는 저 말로 큰 용기를 얻었고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살면서도 누군가의 이야기가 그대로 듣지 않고 내 마음속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을 때가 많았다. 아마 그것은 누군가가 내게 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 스스로 나에게 묻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너는 왜 산티아고에 가려고 하니, 왜 가고 싶은거니?"
너무 아쉬울 정도로 파리에서의 시간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질문을 받고 스스로 한참 그 이유에 대해 되물어보며,산티아고에 가는 이유에 대해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아직은 남아있는 작은 불안함을 스스로 되짚어보고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