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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Sep 26. 2019

매번 최악을 상상하고는 한다.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최악을 상상하고는 다.

일이 나와 맞지 않아 힘들어하는 상상, 좋지 않은 동료나 상사를 만나는 상상,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를 당하는 상상, 친한 친구와 멀어지는 상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상상, 주위 사람이 아픈 상상, 여행을 가서 큰 일을 당하는 상상까지.

매일 좋지 않은 일에 대해 생각을 하고 걱정하는 편은 아닌데,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늘 그랬다.


언제부터 그랬던 걸까.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되고,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되고, 잡다한 생각들을 하게 되면서부터였을까?

많지 않은 나이지만, 나이를 먹어가고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심각한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니까"

미리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힘든 일을 만나면 조금은 나았다. '만약 이러면 어떡하지?' '이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하자.' 머릿속에서 미리 연습했으니까. 아니, 상상했던 만큼의 최악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정말 최. 악. 의 상황을 상상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안 좋은 상황을 만나기 전 미리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최악의 상상을 하는 내가 싫을 때가 있었다. "미리 걱정하지 말자"라는 좌우명이 생길 정도로.. 최악의 상상을 할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왜 그럴까? 왜 이렇게 매번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걸까? 좋게 생각할 수는 없을까? 그러다 알았다. 

아, 나는 무척 약한 사람이구나.
그리고 그걸 누구에게 내보이지도 못할 정도로 나약한 사람이구나.


주위의 사람들은 나를 '단단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혼자서도 척척 잘 해내고, 뭐든지 괜찮다 이야기하고, 혼자여도 즐거워하며, 누구에게도 힘든 내색 하지 않는, 늘 괜찮은, 그런 사람.

때문에 나는 나의 힘듦에 대해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내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떠날까 봐, 괜히 내가 그 사람에게 짐을 지어주는 것이 될까 봐. 함께 힘들까 봐.

그 모습이 상대방을 더 지치고 떠나게 하는 행동인 줄도 몰랐다. 그게 그 사람을 위하는 방법인 알았다.


괜찮아서 괜찮다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무서워서였다.

나는 무척 약했다, 나약한 인간이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쉽게 무너지고, 의미 없는 상대방의 자그마한 행동에도 몇수십 번 생각하고, 혼자서 있지도 않은 나의 잘못을 캐내어 자책하고, 미리 겁내어 용기 내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정말 나약한 인간.


아마, 최악을 상상했던 이유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 나에게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 이 사람이 나에게서 떠나갈 수도 있다. - 나는 혼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도 괜찮아. 괜찮을 거야. 이렇게.


바라지 않으면 조금은 덜 상처 받을까, 덜 아플까 싶어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연습하면 덜 힘들까 싶어서.


처음 내가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참 힘들었다.

나는 누구에게든 괜찮은 사람이었으니까. 나에게조차. 때문에 나에게도 나는 괜찮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약하다. 어리다. 보듬어주어야 한다. 내가, 나를.

그러고 나니 조금씩 나에게 미안해졌다. 늘 나를 다그쳤던 나에게. 늘 괜찮았던 나에게.

그리고 노력했다. 한순간에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그동안 지쳤을 나를 위해. 앞으로의 나를 위해.


여전히 지금도 나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 하지만 많이 노력하고 있다.

나의 힘듦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화를 낼 때에는 화를 내기도 한다. 두렵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갖기로 했다. 함께 하는 세상이니까.

함께하고 싶은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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