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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Oct 02. 2019

일단 질러보자

아직 나는 젊다. 앞으로의 나를 위해서,

"질러보자"

20대 후반부터 나의 인생에 아주 중요한 문장이 되었다.


나는 그저 앞에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도전'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이었다.

"도전"은 여유로운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용기 있는 사람이나 시도하는 거지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학과에 맞춰 취직했고, 취직한 곳에서 계속 일을 했다. 너무 힘이 들어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 아니 배짱이 없었다. 그나마 익숙해졌으니 조금만 더 참자, 다른 곳도 똑같을 거야. 참다 보면, 그러다 보면 나아질 거야. 라며 나를 다독였다.

그러다가 결국 몸에 탈이 났고, 일을 쉬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에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졸업 후 거의 5년을 한 곳에서만 일을 했기에 그만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아무리 같은 직종이더라도 내가 다른 곳에서 잘할 수 있을까, 이 곳보다 더 힘든 곳에 가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들.

그렇지만 지금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20대 후반, 두렵다고 이 곳에 남게 된다면 나는 이 곳에서만 있게 될 것 같았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그저 이 곳만이 세상의 전부인 듯 생각하며.

그래서 질러보기로 했다. 앞으로의 나를 위해.


퇴사를 결정하고 제일 먼저 계획한 것은 해외여행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해외여행도 가보지 못했던 나였으니. 이제 모아놓은 돈도 있겠다, 시간도 있겠다,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나 싶어 한 달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생애 첫 해외여행으로 질러버렸다. 결론은 대성공. 나의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일을 그만두면 흐지부지 시간만 지나다가 결국 다시 재입사를 할 것 같아 지르듯이 계획했던 여행이었다. 그렇게 가게 된 한 달간의 유럽 배낭여행은 나의 가치관과 앞으로의 인생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여행에서 큰일이 일어났다던가, 귀인을 만났다거나, 엄청나게 큰 변화가 생겼다거나 하는 '많은 여행기에서 볼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나의 첫 해외여행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 모습, 그 속에 있는 일상을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함을 느꼈다.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먼 곳의 사람들에게서 나와 같음을 느끼고 일상을 느꼈고. 그러면서 그 안에서의 또 다른 새로움은 나에게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고 재미를 주었다. 그리고 더 넓은 세계로의 갈망, 희망이 생겼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변했다.

적당히 즐길 줄도 알게 되고 새롭게 도전하는 것도 쉬워졌다. 예전에는 지레 겁먹고 하지 않았던 것들도, '어때 한 번 해보는 거지!'라는 생각으로 한 번 도전해보고 실패하더라도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일에 관해서도 내가 하던 일만이 전부라는 생각이 없어졌다. 이전에는 내가 하는 일만이 이 길의 정도(定道)라고 생각하고 그 외적인 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 이후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되면서 길에 정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같은 직업이지만 조금은 다른 방향의 일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즐거움과 애정을 더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첫 배낭여행을 이후로 여행가로서의 삶을 산다거나 무조건 지르는 여행을 하고 있지는 않다. 아니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생이 180도 바뀐 것이 아니라고 나의 생각과 마음가짐이 그대로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180도 바뀔 나를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지금 나는 이전에 하던 직종의 일을 다시 하고 있고, 휴가도 자유롭지 못해 성수기나 연휴 때에 여행을 간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 또한 '질러보자'의 한 부분 같다.

"연휴에는 비싸서 못 가."  

- 아니, 일하는 직장인은 오히려 돈보다 시간을 내는 것이 더 어렵다. 시간이 생길 때 질러야 한다!

"나이가 몇 살인데,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이나 여행을 가? 갔다 와서 취직이나 되겠어?"

- 다 되더라. 오히려 다양한 경험으로 원하는 곳들이 많아지고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그리고 지금 내가 속해있는 직종뿐만 아니라 다른 곳들에서 다양한 일들을 경험할 수도 있다. 새로운 삶이 펼쳐질 수 있다.

"일에 도움되는 거나 하지, 관련도 없는 취미에 돈이랑 시간 들여서 뭐해?"

- 인생 한번 사는 거, 취미 생활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거 해볼 수 있지 않나? 아무리 시간이 들고 돈이 들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한 번쯤은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사소하지만 가끔씩 '지르는' 인생을 사는 나의 모습을 보며,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하기도 한심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 뭐가 중요한가? 나는 지금의 내 삶이 좋다. 다양한 곳을 경험을 하고 그로 인해 나의 일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느껴가고, 변화하는 나의 모습이. 새로운 삶을 꿈꾸는 나의 모습이.


나는 늘 준비하고 있다. 지를 준비를.

당장 여행을 갈 수 없다면 차근차근 돈을 모으고, 가고 싶은 곳에 대해 알아본다. 시간과 지를 수 있는 순간이 생겼을 때에 바로 지를 수 있도록. 또한 가까운 곳으로라도 주말에 떠나기도 한다.

지금 이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이직을 할 수 없다면 관련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한다. 정보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기회가 생길 것이다. 반드시 기회는 온다. 그것을 잡는 것은 준비한 자의 몫이다.


나중에 후회한다 하더라도 일단 해보자. 그 후회 속에서 무언가 찾는 것이 있을 테니. 바뀌는 것이 있을 테니.


지금은 안돼, 나는 못해
라는 생각만으로 포기하기엔 아직 남은 내 인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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