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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Nov 11. 2019

젖은 낙엽 냄새가 나던 날,

슬픈 상상을 해 본다.

오늘 나는

시끄럽게 머리를 울리는 알람을 끄며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고, 입맛 없게 빵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어제 골라놓은 옷을 주워 입고서는 허겁지겁 집에서 뛰어나와, 나와 같은 사람들을 날라대는 지하철에 탔다.

멍하니 빠르게 지나치는 역들을 바라보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하철 역을 나서는데,

비가 와서 그랬는지 진한 낙엽 냄새가 내 가슴속으로 훅하고 들어왔다.


순간 멈칫했다. 네가 생각났거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이내 아무렇지 않게 발걸음을 옮겼지만, 내딛는 발걸음마다

나는 그때 너와 걷던 그 길을 걷고 있었다.


.

그 날 너는 말했지.
오지 않은 순간 때문에 겁내지 말라고 도망가지 말라고 옆에 있겠다고
너의 마음을 다하던 그 말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나는 너를 바라보지 못했다.
너도 같을 거라고. 결국은 나를 떠날 거라고. 결국 나는 혼자가 될 거라고. 어리석은 생각에 가득 차 있어서.

그렇게 나에게 너의 마음을 다 보여주던 너.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에게 다가오던 너.

그런 너에게 상처를 주면서, 내가 상처 받을 것이 겁이나 너를 외면하기만 하던 나.

그래, 너도 알고 있었을 거야.

나는 너를 참 많이 좋아했어.
그래서 나는 우리의 끝을 생각했어. 너무나 좋아했기에 두려웠어.
만약 이전처럼 너와도 끝이 있는 거라면 나는 정말 버틸 수 없을 것 같았거든.

바보처럼 그 끝이 두려워서 너무 무서워서 한 발자국도 너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나는 너를 잡는 대신 너를 밀어냈어.

젖은 낙엽 냄새를 맡자

네가 이별을 말하지만, 내가 하는 것이라던 말.
그 말이 떠올랐다.

.


참 상처 받았고 많이 어렸을 적의 나였기에, 이제는 오히려 많은 이별들로 조금은 용기가 생긴 나이기에

어쩌면, 너로 인해서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나이기에

조금은 슬픈 상상을 해본다.


만약. 만약 너를 지금 만났다면,

나는 너에게 솔직할 수 있었을까. 너에게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너에게 상처 주지 않을 수 있었을까.


참 미안했다. 그때의 너에게. 그리고 그때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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