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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Nov 20. 2019

아빠가 여행 프로를 볼 때마다
나는 불효자가 된다

TV로 전 세계 여행을 다 할 수 있다는 그 말이, 참 싫다.

TV 속의 많은 여행 프로그램들은, 우리를 거실 소파에 앉아 새로운 곳을 즐길 수 있도록 쉽게 다양한 나라들을 보여준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세계 테마 기행, 배틀 트립, 짠내 투어, 꽃보다 시리즈 등등. 이런 프로들을 보며 TV를 통해서 이렇게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힘들게 시간 내고 많은 돈을 들여서 여행을 가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분은 바로 우리 아빠시다. TV를 보며 아빠는 늘 얘기하셨다. 

여행 뭣하러 가냐,
TV만 보면 전 세계 어디든 다 갈 수 있는데


그렇지만 나는 저 말이 너무 싫었다. 죄스러웠다. 꼭 포기하시는 것 같아서. 아빠의 저 말이 여행을 자주 가는 나를 질책하시는 것이 아니라, 부러워하시는 듯해서. TV 속 새로운 나라들 도시들을 보고 '나도 저기 가보고 싶다.'가 아니라, 어차피 나는 못 갈 테니.. 'TV로 봐도 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다양한 곳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고 지금도 어디로 떠날까 고민하고 있는 나와 달리 우리 아빠는 해외'여행'을 단 한 번밖에 다녀오시지 못하셨다. 해외 출장을 가셔서도 정말 '출장지'에만 다녀오시는 탓에, 해외여행은 몇 년 전 설 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갔던 일본 여행이 다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저 가족 여행도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간 것이었다. 가족 모두가 사회생활을 하고 있기에 함께 시간을 맞추기에도 어려움이 있었으며, 아빠의 직업 특성상 갑자기 생기는 일들이 많으셨기에 미리 일정을 빼기도 어려웠다. 특히 해외여행을 가려면 주말을 포함하더라도 적어도 휴가를 2-3일은 내야 했기에. (솔직히 휴가를 내려면 낼 수 있으셨겠지만 그러기를 싫어하셨다. 책임감이셨는지, 불안감이셨는지) 그렇게 결국 날을 맞춰 가게 된 것이 설 연휴를 이용한 여행이었다. 그조차도 연휴기간이라 평소보다 비싼 돈을 들여서 간다고 얼마나 구박을 받았던지.. (그동안은 평일에 하는 여행의 금액과 연휴 때의 여행 금액이 너무 차이가 나기에 돈이 아깝다며 절대 안 간다고 하시는 부모님의 태도에, 번번이 졌지만. 이렇게 계속 미루게 되면 언제고 갈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질러버린 여행이었다. 저 여행은.) 아니, 여행 비용은 모두 내가 냈는데.. 부모님의 반응에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까지 들어 아주 마음이 좋지 않았더란다. 여행을 떠나서도 그랬다. 이왕 이렇게 여행 온 것 재밌게 즐기시면 좋겠는데 엄마 아빠는 뭐 하나 하는 것에도 조심스러워하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걱정이 태산이셨다.


물론 안다. 그것이 나를 위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여행이 싫으셨던 것이 아니다, 즐겁지 않으셨던 것이 아니다. 그저 딸이 고생해서 힘들게 번 돈을 이렇게 한꺼번에 써버린다는 것이 당신들 마음에 불편하셨으리라.

하지만 나는 돈을 낭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돈으로 행복한 시간과 즐거운 경험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동안의 내가 했던 여행들에서도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기에 절대 그 돈들이 아깝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알려드리고 싶었다. 국내여행도 좋지만, 우리나라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새로움들을 새로운 곳에서 엄마 아빠도 느끼셨으면 했다. 나는 너무 행복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 내내 더 다양한 것을 했고 더 즐겁게 다녔다. 내가 여행을 하며 느꼈던 행복들을 부모님께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다.

사실 죄송함도 컸다. 나는 부모님 덕분에 이렇게 여행을 다니고 신나게 잘 즐기며 살고 있는데, 꼭 그게 부모님의 살을 갉아먹었던 것 같아서. 내가 여행을 다니며 한 번도 손을 벌린 적은 없지만, 그것이 진정 손을 벌리지 않았던 것일까. 지금까지 이렇게 빚지지 않고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부모님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신 것이니까.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우리 부모님은 일만 하시고 사셨으니까. 아무리 원하신 일이라고 해도.. 

그래서 그때의 여행은 (정말 심하게.. 비쌋지만) 절대 후회도 없고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함께 했던 여행은 성공적이었지만, 그 이후에도 쉽사리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떠나기는 쉽지 않았다. 국내로는 시간이 되면 부모님을 모시고 자주 여행을 갔지만 해외여행은 늘 어려웠다. 휴가를 낼 수 있는 시간이 엇갈린다거나, 부모님 몸이 조금 안 좋아지셔서 여행보다는 쉬셔야 하는 상황이 된다거나, 급하게 목돈을 쓸 일이 생긴다거나.

아니, 아니다. 모두 핑계였다. 나는 늘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어디든 떠났다. 그러면서도 매번 부모님 생각을 했지만.. 혼자 떠나는 것이 편하니까, 돈이든 시간이든 부담이 덜 되니까 '함께 하고 싶다, 함께 해야 한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들을 애써 외면하며 혼자 여행을 떠났다.


그래서 나는 늘 떠나고 싶어 하고, 떠났음에도 여행을 가면 죄스러웠다.


사실 엄마, 아빠 두 분 모두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솔직히 나는 아빠에 대한 마음의 빚이 더 크다.

엄마는 친구분들과 모임에서 자주 여행도 다니시고 해외여행도 몇 번 다녀오셨다. (물론 그게 충분하다는 말은 아니다. 함께 가지 못하고 많이 보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하지만 아빠는 아니었다. 정말 일만 하셨다. 지금도 하고 계신다. 아직도 당신이 일을 하실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계시고 행복해하시는 것 같지만, 그래도.. 아빠도 여행하고 싶지 않을까?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 싶지 않으실까? 쉬고 싶으시지 않을까? 지치지 않으셨을까..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특히 나는 아빠와 닮았으니까. 우리 엄마가 매번 나와 싸울 때마다 이야기할 정도였으니까. 그놈의 고집스러운 성격 똑같다고. 내가 봐도 닮았으니까. 그래서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여행을 내가 닮은 아빠도 좋아하시리라 생각했다. 국내 여행도 좋지만.. 특히 해외여행. 또 다른 느낌이고 또 새로운 경험이니까. 아무리 늙어도 힘들어도 느끼는 것이 달라도 늘 꿈꾸지 않으셨을까 싶었다.


그리고 이 마음을 더 크게 느끼게 된 것은 얼마 전 일이었다.

어느 날 다 같이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홈쇼핑 채널에서 가족과 함께 갔던 곳의 여행 상품을 팔고 있었다. 채널을 돌리시던 아빠의 손이 멈추고 화면을 보시더니 환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저기 우리가 갔던 곳이네."

가슴이 아팠다.

너무 행복해 보이셔서. 다녀왔던 곳의 영상을 보며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해서 하는 말이었기에. 지금은 갈 수 없기에. 그 시간만을 회상하며 행복해하시는 것이 너무 죄송해서. 새로운 곳을 꿈꾸는 나와 달리, 이전의 기억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며 사는 우리 아빠가 불쌍해서.


그래서 나는 아빠가 여행프로를 보실 때면 가슴이 아프다. 죄송하다.

그리고 다짐한다. 꼭 다시 보내드려야지. 새로운 곳도 보내드려야지. 나도 함께 가야지.


이 글은 나에게 하는 약속이다, 머지않은 시간 내에 부모님과 반드시 함께 해외여행을 가겠다는 나의 의지.

제발 늦지 않았으면 한다. 핑계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글을 적을 때의 심정을 얼마 뒤의 내가 외면하지 않기를, 후회하지 않기를. 그리고 나의 글을 보고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될 누군가도..


부모님과 함께 TV 앞에 앉아 여행프로를 보며 우리가 다녀왔던 곳에 대해 행복하게 웃으며 이야기하고, 가고 싶은 곳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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