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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Dec 13. 2019

죽음에 대하여

내가 함께 있을게 - 볼프 에를브루흐

죽음 앞에 익숙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다.



어느 날, 오리는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는 누군가를 느끼게 됩니다. 그는 죽음이었습니다. 날 데리러 왔냐는 오리의 질문에 죽음은 대답했습니다. "그동안 죽 나는 네 곁에 있었어. 만일을 대비해서. 독감에 걸린다거나 사고가 난다거나..." 그렇게 죽음을 인지하게 된 오리는 늘 죽음과 함께하게 됩니다. 죽음은 혼자 있던 오리에게 말동무도 되어주고 함께 연못에도 가고 나무 위에도 올라가며 친구가 되었습니다. 둘은 꽤 괜찮은 친구사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늘한 바람이 깃털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오리는 문득 추위를 느꼈습니다. "추워. 나를 좀 따뜻하게 해 줄래?" 오리가 말했습니다. 부드러운 눈이 하늘에서 나폴나폴 내렸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죽음은 오리를 말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오리는 숨을 쉬지 않았습니다. 아주 조용히 누워 있었습니다. 죽음은 까칫까칫 일어난 오리의 깃털을 쓰다듬어 매끄럽게 펴 주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강으로 오리를 안고 갔습니다. 죽음은 오리를 조심스레 물 위에 띄우고 살짝 밀었습니다. 죽음은 오랫동안 떠내려가는 오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침내 오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죽음은 조금 슬펐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삶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의 내용이다.

제목으로 예상한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에, 동화 속에 나오는 해골 얼굴을 한 죽음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토록 적나라하게 죽음에 대해 표현한 동화라니. 그리고 머릿속을 멍하게 만드는 내용 때문에.

책을 읽어갈수록 점점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느려졌고. 마지막 문구에서 나는 차마 책을 덮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삶이었습니다."


동화 속 오리는 죽음과 함께 연못에 간다. 사실 죽음은 연못을 무서워했다. 오리를 위해 함께 연못에 갔지만 죽음은 이내 연못을 나오게 된다. 연못을 겁내는 죽음에게 오리는 "추워? 내가 따뜻하게 해 줄까?" 하며 죽음을 감싸주었다. 아무도 죽음에게 그런 제안을 해 준 적이 없었다. 

'아무도'는 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죽음은 무서운 존재였으니까. 죽음을 안아준다.. 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오리가 부러웠다. 나도 막상 죽음을 만나게 된다면 그렇게 대할 수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과연 아무리 많은 죽음을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나무 위에 함께 올라간 둘. 나무에 올라가 아래의 연못을 보며 오리는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저렇겠구나. 연못 혼자 외로이. 나도 없어.' 이따금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죽음이 말했다. "네가 죽으면 연못도 없어져. 적어도 너에게는 그래." 오리가 말했다. "네 말을 들으니 위로가 된다. 그렇다면 안쓰럽게 여기지 않아도 되겠네. 만약..." "그래, 만약 네가 죽으면..."

죽음에 대한 슬픔은 남은 사람의 몫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죽기 전까지의 두려움과 걱정은 삶에 대한 애착인 것이지 그 후에는 그저 죽는 거니까. 내가 죽으면.. 내가 죽으면...




죽음을 먼 이야기로 생각하던 나에게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동화 '내가 함께 있을게.'


나에게 죽음은 참 먼 이야기였다. 행운인 것인지(앞으로 반드시 만나게 될, 다가오고 있을 누군가와의 이별이 처음이라는 이유로 더 클까 봐 참 두렵지만) 한 번도 나는 나의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도 없었고, 아픔으로 인해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렇기에 나에게 죽음은 더 무서운 존재였다.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얼마나 아픈 것인지 무서운 것인지 경험하지 못했고 상상만 하며 두려워했으니까.

그렇지만 무조건 죽음은 무서운 것일까. 무서운 것보다는 슬픔이 아닐까. 동화 속의 죽음도 오리의 죽음을 슬퍼한 것처럼. 

그리고.. 동화 속 해골 얼굴을 한 죽음은 정말 죽음이었을까? 어떻게 보면 죽음은 삶이 아니었을까. 죽음과 삶은 반의어가 아닌 동의어가 아닐까. 죽음은 삶이라는 이름으로 늘 내 옆에 있는 것이 아닐까.

죽음은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닌, 삶 속에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니까.


사실 아직도 나는 죽음이 뭔지 모르겠다. 아니, 누가 알 수 있을까. 동화를 읽으며 조금은 담백하게 죽음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지만 그래, 나는 여전히 죽음이 무섭다. 두렵다. 막상 나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면 오리처럼 죽음을 안아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 덕분에 죽음을 바라보는 자세에 무조건 무서워하지만은 두려워하지만은 않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을 읽게 되고 이 책에 대해 꼭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순간조차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글 조차도 두서없이 그저 생각나는 대로 적은 느낌이니까.

아마 후에 다시 내가 이 글을 읽는다면 나의 글에 대해 스스로 반박하고 싶은 부분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죽음을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많은 것을 준 책이기에, 누구에게든 소개하고 싶었다.


어른을 위한, 죽음을 두려워하던 나에게 많은 생각을 주었던 "내가 함께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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