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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Dec 02. 2019

내가 사랑하는 붉은 태양에게

또한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태양에게.


안녕, 이렇게 너에게 이야기를 하려니 참 쑥스러우면서도 재미있다 :)

너도 알겠지만,

나는 너를 참 좋아해.

특히 어둠 속에서 막 빠져나오는 너를 말이야.


얼마 전, 오랜만에 제주에 갔는데 역시나 나는 붉게 깨어나는 너를 보러 갔단다. 더 멋진 너의 모습을 위해 그 새벽에 차를 끌고 어둠 속을 달려서 말이야. 물론 네가 깨어나는 모습은 어디에서 보아도 멋있지만, 그래도 이왕 제주까지 왔잖아. 조금 더 마음에 간직하고 싶은 담아두고 싶은 너의 모습을 보고 싶었나 봐.


몇 시간 자지 못해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대충 세수하고 모자를 쓰고,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덜덜 떨면서도 혹시나 네가 나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나와버릴까 조바심 내며, 서리가 껴서 하얗게 페인트 칠한 듯 변해버린 나무 계단을 오르고 올라, 앉을 곳 없던 오름에서 추위에 덜덜 떨며 드디어 만났지.

내가 기다리던 너의 그 붉음을.

역시나 멋지더라 너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것 같고, 그런 너를 보러 온 나를 참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줬어.

이때만이 아니야. 늘 너는 멋있었지. 그런 너를, 나는 언제나 어디서나 찾았고 사랑했고.

나는 왜 이렇게 너를 좋아하는 걸까, 특히 떠오르는 너를.


있잖아. 사실 나는 내가 파란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거든?

지금도 누군가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무의식적으로 대답해. 파란색이요. 하고.

뭔가 깨끗한 것 같잖아. 맑고 푸르르고 쿨하고 시원한. 

근데 어쩌면 의식적으로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몰라. 

사실 남들이 보는 나와 달리, 내가 보이고 싶어 노력하는 것과 달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 


뭐랄까, 빨간색은. 왠지 부정적인 느낌이 있었어.

무서운 피.. 도 생각이 나고, 너무나 강렬해서 나를 확 잡아먹을 것 같은 느낌도 그렇거니와.

확! 타오르다가 갑자기 꺼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

꼭 소심한 데다가 다혈질이고 변덕이 심한 내가 감추고 있는 나의 본모습처럼 말이야. 사람이 오히려 자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싫어한다는 이야기가 있잖아. 특히 나의 싫은 모습이 그 사람에게서 보일 때. 그러면서 속으로는 더 생각하고 신경 쓰이는 그런 것 같은?


그런데 어쩌다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중에서 내 마음속에 들어온 사진들을 모아놓고 보면

그렇게 붉은빛 도는 사진들이 많더라. 실제로 내 인별 그램 피드를 보면 거의 붉은 느낌이란 말이지...


그래서 생각했지.

파란색은 내가 좋아하는 색이 아닌 되고 싶은 색이 아닐까,

원래 나는 빨간색, 붉은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붉은 사람이 아닐까.

변덕도 부리고 화도 내야 할 때는 내다가, 다양한 취미에 발만 담그고 이것저것 해보는 그런 사람 말이야.



내가 아까 좋아하는 색이 파란색이라고 했잖아.

그 파란색을 빨갛게 물드는 네가 좋은 것 같기도 해. 내가 애써 되고 싶은 그 색을 물들여버리는 네가.

그 변해가는 순간이. 분명 다른 색인데 꼭 한 색깔 같은 것이. 그렇게 점점 변해가는 모습이 참 좋아.

그리고 그 물들이는 순간이 그저 쉽게 나온 것이 아님을 알기에 더더욱.


서서히 너의 색깔로 물들이고 있는 너를 보고 있으면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차가워지려 노력하지 말라고, 애쓰지 말라고, 그냥 붉어도 괜찮다고 얘기해주는 것 같아서. 애써 노력하는 나를 다독여주는 것 같아서, 그래서 참 좋아.



곧, 또 너를 보러 갈게. 다른 또 멋진 곳에서 말이야.

그때는 꼭 너의 얼굴을 멋지게 보여주었으면 좋겠어.

그때까지 넌 물론 매일 내 옆에 있겠지만, 마음속에 담아둘 만큼 멋진 곳에서 만날 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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