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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Aug 04. 2020

그냥 하면 되는 거야,

저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이 빗속을 달리는 걸까

작년 겨울, 제주도 여행을 할 때였다.


큰 마음먹고 떠났던 여행이었는데, 여행 내내 제주도의 하늘은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우리의 운전 실력에 딱 맞는 차라며 좋아했던 소형차는 강한 바람에 흔들려 무서웠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는 신발을 적시고 우산을 뚫는 듯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여행을 이어나가던 중, 빗속을 달리던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달리는 차 안에서 사람들을 본 것이라 그저 비를 피하려 뛰어가는 사람들인가 했다. 근데 인적 드문 시골길, 그 빗속에서 사람들이 계속 보여 가만히 보니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있었다. 마라토너들이었다.

빗속의 마라톤이라니, 

저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이 빗속을 달리는 걸까


대단하다, 이 세찬 빗 속을 달리다니. 나는 이 비를 보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앞서는데. 나라면.. 못 했을 거야.




그렇게 스치듯 그 대단함에 대해 생각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대단한 사람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제주도 여행에 대해 아는 지인과 이야기를 하는데 그 지인이 자신도 그 시기에 제주도를 다녀왔다며, 그곳에서 마라톤을 하였다는 것이다.

나 : 잠깐, 그 빗속을 뛰던 사람들? 비 많이 내릴 때 말하는 거지?
H : 응, 맞아. 비가 많이 오기는 했지. 그래서 나도 무척 걱정했는데 다행히 완주할 수 있었어.
나 : 와, 진짜 대단하다! 그때 차 안에서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러면서 나는 못할 거라고, 그 비의 기세에 눌려서 시작도 전에 포기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 빗속을 뛰는 사람들이 너무 대단했지. 그런데 그 대단한 사람을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그러자 그가 이야기했다.
H : 뭘 그냥 뛰기만 하면 되는걸, 그리고 너도 산티아고를 완주했잖아! 그게 더 대단한걸?


아, 산티아고. 그렇지, 내가 산티아고를 걸었지. 근데 사실 나는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매일 걸었던 게 다니까. 걷기만 하면 됐으니까.

근데... 산티아고를 다녀온 나를 보며 누군가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내가 산티아고로 떠난다 했을 때,

누군가는 그 힘듦을 자처하는 것에 미련하다고도 했다. 굳이 그 먼 곳까지 가서 왜 힘들게 걷느냐고. 해보지 않은 빗속 마라톤을 걱정하던 나처럼. 그렇지만 그리 힘들지 않았다. 시작하기 전에 생기는 걱정들이 실제로 나를 크게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물론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것을 뛰어넘으며 그 힘듦 속에서 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앞으로의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었다.

누군가는 잠시의 휴식 시간을 갖고 산티아고로 떠나는 나를 보며 대단하다고 했고, 부럽다고도 했다. 그렇게 놓을 수 있는 것에, 용기 낼 수 있다는 것에. 하지만 나는 대단하지 않다. 생업을 포기할 만큼 여유롭지도, 놓아버릴 만큼 철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남들보다 조금 더 내려놓을 수 있는 것뿐이다.



생각해보니 그냥 하면 됐다. 고민되더라도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되는 거였다.

일을 그만두고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도전을 하는 것이 아니더라고 그와 관련된 일을 조금씩 시작하거나 관심을 갖거나, 그렇게 하면 됐다. 천천히 꾸준히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을 놓지만 않는다면 됐다.

걱정이 되더라도, 그 걱정은 일어나지 않은 일. 실제로 그 걱정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크게 만들어 주기도 하니까.

그리고 이것을 깨닫는 데에 20대를 보낸 것 같다.



20대에는 걱정이 많았다.

이 길로 가도 괜찮을까, 이렇게 해도 될까, 나만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들에 사로잡혀 나와 맞지 않는 것들을 놓지 못하고 힘겹게 붙잡았다. 남들이 가는 길, 남들이 보기에 성공이라 부르는 것들, 보이기에 부끄럽지 않은 것들. 내가 원한 것은 아닌.. 그러면서 꿈꾸는 것은 자꾸 뒤로 미뤄버렸다. 나중에, 나중에 조금 여유로워지면 할 수 있을 거야. 잊지 말자 다짐하며.

맞지 않는 것을 힘겹게 잡고 있는 것이, 놓지 않는 것이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남들이 다 하는 거니까, 모두들 그렇게 살고 있니까. 그저 꿈을 좇는 것은 철없는 이야기 같았다. 어른의 자세가 아닌 것 같았다. 노력해서 자리를 잡고 나면, 그때 나의 꿈을 그때 가서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하고 싶다는 열정이 부글거렸다.

무시했다. 내 인생을 위해서. 나의 미래를 위해서.

근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정말 내 인생을 위한 걸까?



그렇게 미련하고 힘들게 잡고 있던 것을 조금은 내려놓고 '성공'이라는 목표를 위한 도전이 아닌, 미뤄만 두던 '나의 행복'을 위한 도전을 시작한 20대 후반.

걱정되고 후회됐지만, 생각처럼 걱정할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길이 보였다. 그러다 보니 기존에 하던 일도 즐겁고 행복해졌다. 오히려 힘들게 버틸 때보다 더 즐겁게 열정적으로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놓음'으로 인해 생기는 '또 다른 기회'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래, 그냥 하면 됐던 거였다.

대단한 목표, 완벽한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루하루 하면 되는 거다. 그게 행복이니까. 그리고 그게 나를 위한 성공이니까.

이걸 깨닫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생각해보면 늘 누군가에게 멋지게 보이고 성공하는, 그리고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이 가는 길 그대로 따라갔고 그 선을 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니 힘들고 무겁고 버거울 수밖에. 그냥 조금씩 내가 원하는 것을 해도 됐는데. 남들의 시선보다 내가 더 소중한 것인데.

아마 모두들 그걸 깨닫기 위해 그 수많은 젊은 나날을 보낸 것 아닐까?

그리고 생각한다. 그렇게 수많은 고민을 하고 힘겹게 버텼기에 놓을 수 있는 것이라고. 후회보다는 아쉬움이, 그다음에 홀가분함이 남을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테니까.


지금처럼 조금 내려놓은 마음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조금씩 해 나가면,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바라던 세계에 젖어있을 거라고. 그 속에서 내가 원하던 행복과 삶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행복한 내 모습을.

내가 원하던 그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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