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ON Apr 09. 2020

카카오톡에서 유령이 되는 사람들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은 그들의 '무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핸드폰을 확인하면 대부분이 갖고 있는 어플, 카카오톡. 2019년 기준 국내 어플 점유율 1위이며 대한민국 인구의 무려 72%가 사용을 하고 있다고 하니 거의 국민 어플이나 다름없다.

노란색 어플은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카카오톡을 확인함은 물론이고,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대화하는 것 외에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전화 말고 거의 대부분 카카오톡을 이용하니 말이다.


누군가와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는 카카오톡의 특별한 기능 중 하나는 바로 '읽음'을 나타내는 대화창 옆 숫자일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곳이 많지만,) 상대방이 나의 글을 읽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1'이 아직 그대로인지 없어졌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숫자 '1'을 통 그들을 찾아냈다. 카카오톡 안에 존재하는 유령들을 말이다.

'나 하나쯤이야'하며 읽고도 답을 하지 않는 단톡방의 유령들과
아예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리는 안읽씹 유령들이다.



처음에는 바쁘다 생각했다. 내가 여유로운 시간이라고 상대방 또한 여유로운 시간인 것은 아니니까. 

기다릴 수 있었다. 상대방이 시간이 될 때 답장을 받으면 되는, 그런 일상적인 내용들이었으니까.

그리 급한 문자도 아니었다. 급한 내용이었다면 전화를 했겠지.


그런데, 아무리 급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답장을 기다려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 답이 없으면 숫자 '1'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을 알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바쁜가?' 생각했다. 바쁘지 않고서는 읽고 대답을 하지 않을 리 없으니까, (솔직히 바쁘면 확인조차 하지 못할 텐데 확인은 하고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기에서 '읽씹'은 대화의 마무리에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다. 대화가 당연히 이어져야 하는 상황에서의 '읽씹'을 말한다.) 읽지 않은 상태여도 역시 '바쁘구나.'하고 기다렸다. 바쁘니 확인을 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유령들은 계획적이고 습관적이었다.

본인이 필요할 때는 답이 빨라지고 자신이 흥미 있는 대화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흥미가 없는 대화이거나 피하고 싶거나 꼭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될 때에 그들은 유령이 되었다.


유령들은 말한다.

별거 없는 내용이라서, 지금 대답하기는 귀찮고 그렇다고 대답 안 하기에는 좀 그래서, 지금은 좀 바빠서,

읽지 않았으니까, 아니면 사람이 많으니까 나 나 정도는.이라는 생각으로,

어떠한 유령은, '읽씹'이나 '안읽씹' 또한 자신의 확고한 표현의 방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 답장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다. 스스로의 결정이다.

그렇지만 나는 누군가의 의사표현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 대화방법에서의 기본적인 예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멀뚱멀뚱 아무 대꾸도 안 하지 않지 않는가, 상대방이 이야기를 할 때에 귀를 막고 있지 않지 않는가, 다른 곳을 쳐다보고 딴짓을 하지 않지 않는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눌 때에는 하지 못할 행동들을 어찌 마주 보지 않았다고, 문자라고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표현 방식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틀릴까 봐 겁이 나고, 누군가의 의견을 거절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아 두렵고, 흥미가 없고 귀찮아서 대답하기는 싫은데 그러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 싫고 자신도 상처를 받기 싫어서 등등. 그저 사람과의 관계를 온전히 이겨낼 수 없어서 피하고 있는 것이라고.

회피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당신은 상대방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모를 거라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했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은 알고 있다.


아무리 문자이지만, 상대방을 마주하고 있지 않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생각해도 상대방은 알 수 있다.

당신이 정말 바쁜 건지, 피하는 것인지. 

당신이 유령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당신을 알고 있는 사람일 테니, 그리고 한 번이 아니었을 테니.


당신의 행동이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서 도피하듯 잠시 유령이 되었겠지만, 이미 당신은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는 당신이 피하듯 숫자 '1'을 덮어버렸을 때, 당신의 답장을 기다렸을 것이다.

없어지지 않는 숫자 '1'을 보며, 나의 글을 한번 더 확인하고 혹시나 실수가 있던 건지 무시할만한 글이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러며 당신을 기다리다 실망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과의 관계를 결국 끊어낼 것이다.


처음에는 속상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기분 나쁜 일이 있나?' '내가 한번 더 연락을 해볼까?' 평소 만나면 반가워하고 필요로 하고 즐거워하던 사람이었기에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 나를 나쁜 사람 만드는 사람들이다.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도 했었다. 나의 진심을 이야기하면 충분히 바뀔 거라고. 그렇지만 그때뿐, 결국 시간이 지나고 자신이 또 귀찮아지면 그들은 다시 유령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은 원래 그런 회피형 인간이다.


그들 때문에 속상해할 필요 없다. 나를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저 끊어내자.

그 사람들 말고 나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의 연락을 기다려주는, 반가워해주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자. 나를 사랑해주고 나에게 힘을 주는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하자. 아무리 별거 없는 내용이더라도, 피하고 싶은 내용이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부딪히는. 솔직하게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말이다.



* 이 글에서 표현한 유령들은, 자신의 '거부'의사를 읽씹과 안읽씹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너와 인연을 끊고 싶고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읽씹과 안읽씹으로 대답하는 사람들이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던 사람들은 평소 좋은 사이이며 자주 연락을 하고 만나면 재미있게 지내지만, 자신이 대답하기 꺼려지는 때나 흥미가 떨어지고 귀찮아지면 슬그머니 사라졌다가 나중에 "나 바빴어!" 하며 다시 인연의 끈을 잡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서로의 관계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요.

관계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고, 그로 인해 나를 깎아내린 적도 있었기에 스스로에게 '그런 관계를 청산해라!'는 의미에서 더 노골적으로 적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부분에서 기분이 나쁘고 좋지 않게 보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넋두리 겸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쓰고는 하는데, 갑자기 조회수가 폭발하더니 몇몇 분들은 불편한 감정을 댓글로 남겨주셔서 그에 대한 저의 생각과 감사함은 댓글로 남겼지만. 혹여 댓글까지 보지 못하시고 기분이 상한채 글을 끄시는 분들이 계실까 싶어 이렇게 또 넋두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

생각도 못한 반응들을 (아니, 어쩌면 예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좀 쎄게 썼거든요.. ㅎ) 마주하고 아직은 머릿속에 있는 내용들을 잘 풀어내지 못하는 글빨에 노력해야겠구나, 반성하기도 하고 어디에 올랐기에 이렇게 조회수가 오르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ㅋㅋ 그저 "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나 보다" 정도로 넘기시고 혹여 기분이 상하지는 마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을 수정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해보았지만, 수정해버리는 것보다는 저의 부족한 글빨을 반성하는 의미로 놔두고 싶어 이렇게 사족을 붙입니다. :)

작가의 이전글 버리니 채워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