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0. 아 걱정된다.
오랜만에 남기는 글이 정치와 관련된 글인 만큼 우려가 앞선다. 지금 남기는 이 글은 단순 최근의 사태 및 대한민국 정치판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한 글임을 먼저 밝히고 싶다. 그 어떤 프로파간다 및 선전 목적의 글도 아닐뿐더러 필자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정치적 사상을 강요할 수 있을 만큼의 이해도도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필자는 한국 정치판을 좋아한다. 웬만한 연예인 가십보다 자극적이고, 의정활동으로 나오는 의견들은 우리 삶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자극적이면서 효용적이라니. 이보다 더한 여흥거리도 없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 여흥거리에 대해 느꼈던 생각들을 톺아보기 위한 기록이다.
혹시나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의견을 개진해준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토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일 뿐이다. 그러니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무작정 귀를 닫지 말아달라. 그냥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해달라.
#1. 혼란스러운 나라보다 다음날 출근이 더 싫다면 비정상인걸까.
지난 12월 3일, 대한민국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 계엄 선포를 했고 국회는 폐쇄되었으며, 차기 대선 유력 정치인은 국회 담을 넘는 실시간 방송을 하는가 하면 불과 수 시간 만에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 국무 회의로 계엄 해제가 되었다. 당사자가 아직 직위에 있는 만큼 지금 이 사건이 완전히 종결되었다고 보긴 어려울 수 있지만 벌써 역사에 친위 쿠데타 또 내란 사건으로 남을 것이라는 것에 부정하기는 힘들다.
비상계엄이 일어난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 본인과 그 주위를 둘러싼 참모진의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 ‘비상계엄’ 자체에 대한 가벼운 생각과 급발진으로 이루어진 참사라고 생각한다. 청문회에서 확인되는 당사자들의 증언과 군경의 핵심 관계자들의 인터뷰 내용은 이를 강하게 뒷받침한다.
사건 당일 필자는 두렵다기 보다는 물음표의 연속이었다. “엥? 왜? 지금? 근데 계엄이면 뭐가 달라지는 거지?” 사실 실제 상황인지조차도 잘 감이 오지 않았는데 이건 자취방 위를 지나가는 헬기 덕분에 알아챘다.
솔직히 뭐 신기하고 시끄러웠고, 자취방 바로 옆 국회에 특수부대원들이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모습들을 뉴스로 실시간으로 보면서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실시간으로 보면서도 남의 일 같았다. 물론 흥미 반 우려 반으로 뉴스와 기사들을 찾아보았지만 이내 현실로 시선을 돌렸다. 그 다음 날 여의도로 출근도 아무 문제 없이 했다.
오히려 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여러 언론과 대학, 단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를 비토하는 대자보를 작성해 올리기 시작하던 중 조금 늦게 글을 올린다고, 또 대자보를 개인의 SNS에 공유하지 않는다고, 심하게는 지난 총선 국민의 힘을 대부분 지지하는 TK 지역에 대한 일부 누리꾼들의 무분별한 비판이 보였다. 아. 저건 또 아닌 것 같은데. 국민의 한 명으로서 지도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은 자유다만, 왜 그것을 하지 않느냐고 저격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시각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 같은 의견들이 모여 연대함으로써 의견에 힘이 생기는 과정은 너무나 멋진 일이지만 각자의 다른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것 역시 우리가 자각하고 견제해야만 한다는 점을 상기했다.
또 정말 개인적으로는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동년배들의 글이 썩 그리 와닿지는 않았다. 우리 세대가 과연 민주주의가 없었던 곳에서 살아봤던가? 직선제가 아니었던 적도, 군부 시절을 겪지도 않은 나인데 그 소중함을 얼마나 잘 인지하고 있나? 하는 생각들. 그 시절을 직접 겪은 민주화 운동 세대야 그들의 아픈 과거를 재현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내가 아는 것은 교과서와 역사 자료. 또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 등 영화로 접한 이야기들이다. 나는, 또 우리 세대는 어떻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주창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물음표가 여전히 남아있다.
이건 필자 스스로가 현실주의, 보신주의의 관점에서 당장 내 안위와 평소 생활에 지장이 가지 않는다면 크게 괘념치 않았기에 그런 것일 수는 있다. 솔직히 필자는 불안정한 정국 탓에 떨어지는 국내 주식시장과 외교 단절, 국격과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더 뼈아프게 느껴졌을 뿐, 막연히 나라가 망하네, 민주주의를 상실했네 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유보의 의견을 남기고 싶다. (단, 필자도 이번 사태로 그간의 사회계약을 파괴하는 시도가 있었고 지도부의 비합리, 비이성이 드러났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분노한다.)
#2. 선거에 만약은 없다
사실 이번 사건 전까지 필자는 ‘헌정 이래 최악의 정부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직전 정부를 뽑았었다. 특히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과 그로 인한 주택 가격 폭등, 그로 인해 이번 생에 주택 구매를 포기하는 사람들의 무력감. 또 조국 사태 등에서 왔던 위선과 내로남불. 성별, 연령, 지역별 혐오와 여기서 파생된 사회 문제들은 나와 대한민국에 어지간해서는 사라지지 않을 큰 상처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투표했었다. 문재인 정부에 지쳤었고, 민주당계 후보인 이재명 후보의 공약은 터무니 없었다. 만약은 없다는 말은 모든 일에도 통용된다. 혹자는 이번 일을 가지고 지난 대선에서 왜 윤석열 대통령에 투표했는가를 묻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틀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들었고, 문재인 정부의 문제들이 지속됨으로써 파생된 것이 현 정부라고 본다. 당연히 정치에 대한 준비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던 사람이 덜컥 행정부의 수장이 됨으로써 예상되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당시에 정권교체를 갈망했던 것이다. 당선인이 이정도의 미치광이일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투표한 사람의 반이 표를 줬을 것이다.
선거에 만약은 없다. 국민들은 각자의 논리로 후보에 투표했을 것이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틀튜브가 되든, 진영논리가 되든, 자기 나름의 판단과 신념으로 당시에 맞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믿는다. 어떠한 사건이 있을 때 그것을 바탕으로 경각심을 가지고, 또 딛고 일어서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부정투표 무새들은 제발 정신 차리시고.
#3. 고인 물은 썩기 마련
개인적으로 지금 가장 우려되는 부분 중 하나는 앞으로 보수, 혹은 '국민의 힘계' 진영에서 어떤 정치인도 선출되지 못할 것 같다는 점이다. 나는 지난 총선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 있었지만 개헌선인 200석을 범민주당 계열에서 차지하지 못한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권력은 분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비슷한 가치를 가지는 사람들끼리만 협치없이 개헌을 한다면, 사회 전반이 편향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지금도 국민의 힘 국회의원이라는 작자들이 대통령 탄핵과 영부인 특검 반대를 위해 애쓰는 꼴을 보고 있자면 한심하기 그지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 정당의 국회 개헌선 이상 차지는 분명 리스크 있는 부분이다. 일본의 경우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자민당이 50년이 넘는 세월간 집권당을 차지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정치적 견제가 가능한 의회 구성이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침략을 위한 군대 구성을 막는 헌법 9조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고 나름의 자정이 이루어졌던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단일 정당 개헌선을 막을 정당이 국민의 힘이 되어야 하는가? 라고 한다면 그건 반대다. 그렇기에 상술한 문단에서 ‘국민의 힘계’라고 칭한 부분도 짚고 넘어가겠다. 과연 그들은 보수 정당일까. 글쎄, 난 수구 정치인들의 집단에 더 가깝다고 본다. 최소한 내가 이해하는 ‘보수’라는 개념은 온건하게나마 발전을 하는 개념이다. 자본주의, 물질적 가치 등은 차치하고서라도 최소한 새로운 사회 국면에 들어섰을 때 느리지만 탄탄하게 변화를 이끌어내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 힘 정치인 대부분에서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산업화의 후광을 뒤에 업은 덕에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특정 지역에서 당선되고, 발전적인 일보다는 현재의 안위만을 생각해 공수표나 남발하다 당선되는, 그런 자들은 응당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한나라당-새누리당을 위시하는 보수는 다소 부패하거나 느릴 수는 있지만 엘리트 집단으로서 능력있는 사람들이고, 민주당을 위시하는 진보 세력은 민주화를 이끌어 온 선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간을 지나오며 그런 생각의 근간들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제발 최소한의 상식과 도덕성이라도 제대로 함양한 정치인이 주류가 될 수는 없는걸까.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로 민주당계 정당 혹은 정치인들이 절대선으로 인식되는 것 역시 우려스럽다. 쿠데타를 저지할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민주당 의원들의 기민한 대처임은 분명하다. 다만 진영논리에 매몰되면 한 쪽을 절대선으로, 다른 쪽을 단순히 절대악으로 치부하기 마련이다.
일례로 한 때 윤석열 정부의 R&D 예산 삭감과 관련해 모교 커뮤니티를 포함한 여러 매체가 달아올랐던 적이 있다. 나를 비롯한 여러 대학생, 대학원생들은 이때도 이번 정부에 실망하고 개탄했었다. 그 반대급부로 의석 과반을 차지하는 민주당과 국회의 견제를 기대하기도 했었고. 하지만 최근 민주당에서 제출한 예산 역시 자그마치 815억이나 삭감한 것을 보고 필자는 오히려 더 실망했던 기억이다. 기억은 휘발성이지만 각인된 이미지는 강렬하다. 아마 제대로 팩트체크를 하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또 민주당은 선, 국민의 힘은 악으로 기억할 것이다. 정치인은 그 성과와 공약, 비전으로 평가 받아야 할 뿐 주홍글씨로 정당하게 평가될 기회조차 빼앗는 것은 안될 일이다.
4. 세상은 요지경
최근 지구촌을 보면 루마니아 헌법재판소가 후보의 대선 1차 투표를 무효화하고(이건 러시아의 투표 조작이 있었다고 알려졌지만ㅎ), 이스라엘, 독일, 프랑스 등 여러 지역에서 극우 정당들이 득세하는 모습이 보인다.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트럼프가 당선된 것만 봐도 쉽지 않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종종 민주주의의 한계가 이렇게 나오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무릇 민주주의의 장점과 단점은 모두 당신과 내가 같은 한 표에서 오는 것. 이익집단과 그 니즈를 잘 긁어주고 마케팅만 적절히 된다면, 그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주목을 받게되는 것 같다.
(이때 말하는 민주주의는 정확히는 대의 민주주의지만, 그렇다고 우르르 몰려나와 WA! 직접 민주주의! 도편추방제! 뭐 이럴 수는 없지 않나.)
특히 우리나라는 유래 없는 빠른 발전의 역사가 현재의 극단적인 양극화에 한 몫 톡톡히 하지 않았나 싶다. 워낙 짧은 역사 속에서 이리도 굵직한 사건이 많으니, 자신이 가장 뜨거웠던 순간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정당의 콘크리트 층으로 자리잡았지 않았을까. 국가 주도 산업화와 군부의 독재, 민주화 운동 세대와 호황, MZ 세대의 등장이 불과 몇 세대만에 이루어졌고, 각 세대들을 대표하는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아마 우리 세대는 최근 몇 년간 일련의 사건들이 주된 이벤트로 각인될 것이다. 그런데 흠.. 우리 세대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정치인이 나오기나 할까. 인구학적으로 가장 적은 표를 지니는 우리 세대를. 오히려 노년층 세대를 위한 공약이나 남발하며 표를 당겨오고, 고스란히 그 부담은 우리 세대가 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두렵기만 하다.
아니다. 두렵지 않다. 특이점이 온 세상에서 AI 신이 어떻게든 해주겠지. 몰라.
#5. 희망사항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오늘도 퇴근하는 길에 본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확성기와 무수히 많은 대자보, 현수막이 보였다. 이 정부와 여당의 끝이 어디일지는 몰라도 지금 시민들이 분노한 모습을 볼 때 썩 좋을 것 같지는 않다.
필자는 능력있는 지도자를 원했다. 하지만 이제는 최소한의 상식적인 지도자를 원한다. 하다못해 뚜렷한 정치 철학이 있고, 그에 맞는 정책과 국가 운영을 할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또 젊은 지도자를 원한다. 원시 사회가 지나며 이제는 노인보다 늙은이가 더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뇌가 녹은 사람들이 아닌, 급변하는 세계정세에서 유연하고 기민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정당 정치의 변화도 바란다. 막걸리 먹고 형 동생 운운하는 지역 토호가 아니라 정말 국가와 지역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부담없이 정치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한다. 정치발언을 하는 것 역시 터부시 되는 것도 변화가 필요하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생겼으면 좋겠다. 이 바램이 바램으로 끝나지 않길 일말의 희망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