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오늘 야구하냐?

#4

by LogSquare

#1. “저희도 올림픽때는 핸드볼봐요, 가끔.”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코치진들이 단장 백승수를 향해 농담조로 뱉었던 대사이다. 핸드볼 우승 감독 출신으로 단장에 부임한 백승수에 대한 아이스 브레이크인 한편, 드림스의 코치진들의 정신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문장으로서 내 뇌리에 깊게 박혀있는 라인 중 하나이다. ‘야구’를 주제로 글을 쓴다면 헤드라인으로 꼭 쓰고 싶었다.


스크린샷 2025-04-21 233603.png 사실 스토브리그에서 제일 철밥통은 이 분들이 아닌가...


나는 야빠다. 그것도 꽤나 지독한 편인. 그렇기에 월드컵이든 올림픽이든 우리 팀이 경기하면 그냥 야구 본다. 일주일 중 월요일이면 심심함을 느끼고, 비가오는 날이면 왜인지 기분이 더 울적해진다. 말마따나 올림픽 기간에도 공영방송 대신 스포츠 채널을 기웃거리는건 덤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TV에 틀어둔 삼성라이온즈 경기로 야구를 처음 배웠다. 처음엔 당연히 룰도 잘 몰랐지만 “치고 달려라~ 멀리 높이 더 빨리 쏴 봐~” 하는 노래는 내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증대현 씽카볼’과 2014년 한국시리즈의 ‘날빼볼’ 등 크고 작은 이벤트는 야구의 쾌감에서 오는 도파민에 절여지게 만들었다. 고등학교에선 친구와, 군대에선 선임과 캐치볼도 해왔고 (안지만이나 손승락처럼 투구폼이 특이한 사람들을 따라하는 것이 그땐 어쩜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더라), 지금도 무료할 때면 침대에 누워 혼자 야구공이나 천장으로 던지고 받곤 한다.


그런데 야구 팬들은 다 알 거다. 사실 야구는 보면 재미있을 때 보다 열받을 때가 더 많다는 걸. ‘히 드랍 더 볼’과 같은 상황이 내 팀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속에 천불이 다 날 거라는 걸. 당장 지금도 내가 응원하는 팀의 문제를 줄줄 읊을 수 있는 것이 야빠들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챙겨보고,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이토록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지. ‘왜 이렇게 우리들은 야구에 진심인지’라는 물음이 거기서부터 생겨났던 것 같다.


야구팬 공감.jpg 그래서 해체는 언제한다고?



#2. 야구 예찬론


야구는 *구로 끝나는 다른 종목과는 차별화되는, 그래서 특히 더 매력 있는 요소들이 있다.

먼저 경기 시간이나 승리를 위해 필요한 점수가 딱히 정해지지 않은 점이다. 그 덕에 웬만큼 한 쪽으로 기울어진 경기가 아닌 이상 종반부에 들어간 시점에서도 응원의 열기가 사그라드는 일이 잘 없다. 가끔 양 팀 모두 두 자릿수 점수대가 나거나 큰 점수차가 뒤집히는, 소위 ‘대첩’ 경기가 열리면 집에 가는 것조차 소원해질 수 있지만, 야구에 미쳐 사는 사람에게 그깟 시간이 대수랴. 애매하게 경기를 끊고 집을 가는 것 보다 당장 내 눈 앞의 한 점이 더 소중할 사람들이다.


5612696_1719359596835.png 대충 이런 경기 본다고 생각하면 홧병 뒤집어진다. 저저 12회까지 동점인거 보소...


또 구기종목들 중 사람이 직접 득점을 하는 스포츠는 야구 뿐이다. 축구든 농구든 여타 다른 스포츠는 점수를 내기 위해 공이 움직여야만 한다. 사람은 공을 쫓아 움직이는 객체로서 기능할 뿐이다. 하지만 야구에서는 베이스와 베이스까지 움직이는 것이 사람이다. 점수를 내기위해 치고 달리는 주체가 사람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어나는 해프닝들과 부상, 또 실책마저 감동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걸어서 1루까지 간 적이 없다.” 삼성 라이온즈의 영원한 10번, 양준혁이 했던 말이다. 아웃될 타구인 줄 알면서도 혹시 모를 한 번의 기회, 1점의 점수를 위해 전력질주를 하는 모습은 야구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모로 느끼게 하는 것이 많은 자세인 것 같다. 아, 이 얼마나 휴머니즘적인 스포츠인가!


스크린샷 2025-04-21 234426.png 양신... 행복하시죠? 이제 아들만 빨리 좀 낳아주세요...


비단 정신적인 요소 외에도 야구는 물리적으로 아름다운 스포츠이다. 투수들의 동작은 인간의 일반적인 가동범위를 뛰어넘는, 한계를 벗어나는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체를 강하게 딛어 체중을 싣고, 허리와 골반을 돌리며, 팔꿈치에 그 모든 에너지를 담아 공으로 환산하는 동작은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충분히 역동적인 예술이다.

스포츠과학자들에 따르면 이론상 인간의 몸으로 야구공을 최고 구속으로 던질 수 있는 속도는 177km/h 혹은 201km/h 수준이라고 한다. 곧 150km/h의 공을 던지는 투수는 이미 그 한계에 도달한 것이기도 하다는 방증이며, 많은 투수들이 팔꿈치 인대를 다른 인대에서 접합하는 토미존 수술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본인의 몸을 갈아 넣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가 곧 야구인 것이다.


b98fc4a65406c8c01bf56842959cba77_res.jpeg 샌프란시스코의 팀 린스컴은 부족한 피지컬을 특유의 역동적인 투구폼으로 반전시켰다.


그.. 어… 사실 필자도 야구 연습장에서 젖 먹던 힘까지 끌어다 던져봤는데 채 90 언저리가 안 나오더라… 새삼 야구선수들에 경의를 표한다.



3. 뉴비와 방구석 전문가 사이에서.


최근 KBO에 부쩍 유입 팬들이 늘었음을 느낀다. 라팍 예매조차 구단의 아쉬운 일처리와 함께 쉽지 않아졌을뿐더러 단순히 야구장 입장 평균 관객 수만 봐도 근 몇 년 새 야구 팬들이 정말 많이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규 유입 팬들로 인해 오는 북적거림은 활력을 불어넣지만 글쎄 왜 이놈의 반골 기질은 이런데서도 나타나는 걸까. 나는 그들을 썩 환영하는 입장은 아니다.


“야구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경기 중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게 싫다”는 원색적인 말을 어떻게 완곡하게 잘 패러프레이징 할 수 있을까 ㅋㅋㅋ. 뭐 나도 자칭 방구석 전문가로 얼마나 전문성이 있냐 싶다가도 가끔 직관이나 중계 댓글에서 2군에 내린 선수를 왜 안올리냐는 둥 어떤 선수 트레이드해서 다른 선수 데려오라는 둥 하는 말을 들을 때 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낀다. 물론 그들 나름의 논리와 체계를 가지고 한 말이겠지만 글쎄… 세이버 매트릭스 수치와 스윙 메커니즘, 또 최신 메이저리그 트렌드에 환장하는 나로서는 그런 반지성이 전혀 용납이 안된다 싶더라.


스크린샷 2025-04-21 235316.png 삼팬이면 이새1끼는 아셔야죠...


또 일부 몰지각한 신입 야구팬들이 몇몇 신인 선수들의 외모만을 좇아 이래저래 목소리를 내는 것들이 눈살 찌푸려진 적이 있다. 어련히 야구 판에도 슈퍼스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자고로 슨슈면 야구를 잘해야지 어딜 외모로 라인업에 끼려고 하냐 이말이다. “나한테는 안타가 콧날이고 홈런이 어깨다. 김지찬이 차은우고 요즘 구자욱은 오지헌이다 이말이야”


87350f6a2d4901c1590a37f74dc9a75e.jpg 만루에서 가장 잘생겼던 야구인 .jpg


사실 뭐 헛소리를 길게 썼지만 거시적인 입장에서는 지금이 훨씬 더 나은 현상이란 걸 안다. 팬이 있어야 스포츠가 있으니까. 또 그들 역시 한 해 두 해 지나며 나처럼 될 수 있으니까. 그냥 지나가는 탑골공원 야빠의 아집 혹은 이기적인 골수 야구팬의 님비 정도로만 이해해달라.

사람들이 야구장을 찾고 또 야구를 좋아할 수 있는 이유 중에 ‘룰은 잘 몰라도 같이 응원하는 맛’, ‘그냥 틀어두고 중요한 장면만 보는 맛’도 한 몫 할 것이다. 언제쯤 나는 이런 점도 포용해 줄 수 있는 어른 될 수 있으려나 싶다.


벌써 4월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참 요즘 우리 팀 경기하는 거 보면 여러모로 답답한데…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내 팀인걸 어떻게 하나. 응원해야지. 내일은 야구하는 날이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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