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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가 너무 좋았다. 대학 4학년이 되도록 토익점수도 없고, 학점도 안 좋았지만, 이벤트 학회도 만들고 대학 내내 그 방면으로는 나름 열심이었다. 그땐 길이 너무 확고해서 대기업에 원서조차 낼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졸업할 무렵, 바로 기업이벤트 대행사에 입사했다.
기본 하루 14시간을 일했다. 광고주들이 퇴근할 시간인 저녁 6시가 지나야 제대로 일이 시작됐다.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다,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뭐라도 먹으러 가기 일쑤였다. 소주 몇 잔 따라주시고는, 부탁 좀 한다며 퇴근하시는 부장님을 배웅하고, 선배들과 밤새 기획안을 쓰는게 낙이라면 낙이었다.
장기 이벤트가 있으면, 최소 한 달씩 행사팀과 전국을 돌았다. 당시 우리 부모님은 내 얼굴을 한 달에 두 세번 정도 볼까 말까 했다. 잠도 부족한데 집에 왔다갔다 하는 시간도 아까워, 달방을 구할까도 생각했다. 당시 나는 인턴이라 월급이 50만원이었는데 회사 앞 사우나 달방이 35만원이었다. 도대체 가성비가 안 나와서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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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한 중소기업에서는 회사가 상장하는 걸 경험했다. 상장을 하고나자 회사에 좋은 인력들이 많아졌다. 굵직한 기업들과 파트너십도 생겨났다. 상장회사가 의례 겪는 성장통들은 있었지만. 회사가 상장하는 전 후의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때 함께한 많은 선배들은 아직도 나의 멘토다. 그 땐 정말 열심히 했고 더 폭넓은 마케팅에 관심이 생겼다. 재밌게도, 회사에선 내가 대형 이벤트나 행사 기획을 아주 디테일하게 잘한다고 기특해했다. 첫 직장에서 배운 도둑질이 빛을 발했다. 나를 알아주고, 응원하고, 이끌어 주는 선배들이 생겼다.
그 당시 우리 회사는 삼성, SK 등의 계열사 들에서 합류한 인재들이 많았다. 내가 영향력이 큰 곳으로 이직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선배들이 나를 추천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당시 대학생들이 제일 다니고 싶어하는 회사로 늘 꼽히던, SK컴즈 (싸이월드)로 이직하게 됐다.
아 그때의 싸이월드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까. 정말 재밌는 곳이었다. 추억이 많다. 아내는 아직도 내가 광화문 토니로마스에서 싸이월드 도토리로 데이트 비용을 결제하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이 글을 읽으시는 중에 싸이월드 도토리를 아시는 분이 있다면 너무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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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으로 갔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내와 둘 다 나름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굳이.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영국에 와서 몇 달 지나지 않아 싸이월드가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미니홈피가 없어진다니! (BGM도 많이 사놨었는데.)
회사는 얼마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한국에서 당황해하는 동료들의 소식이 들렸다. 그 때 알았다. 이직은 필요에 의해서도 하지만, 준비가 되어 있기도 해야 한다는걸. 무려 십 몇 년 전에 이미 사내커피숍에 수면실까지 있던 그렇게 멋진 회사가 하루 아침에 문을 닫는다니. 카카오톡전에 네이트온이 있었고, 페이스북전에 싸이월드가 있었다.
와- 사람일은 모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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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직은 여간 쉽지 않았다. 영알못인데다가 비자 자체가 없었으니까. 주변에선 왜 그렇게 무모한 걸 하냐고 했다. 영어공부 한다치고, 리크루터들한테 콜드콜도 많이 돌렸다. 인터뷰를 수도 없이 했다. (인터뷰에 많이 초대되는 것도 기술이다.) 비자 만료 한 달전에 취업이 됐다.
커리어에 어떤 성취를 이룬 분들이나, 글로벌에 자신의 이름을 세운 분들을 만나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그들은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쫒아서. 자유로운 삶의 형태를 쫒아서. 각기 다른 목적이 있지만. 자신의 목적을 향해 겪는 어려움들을 당연한 과정으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영어를 못하는 것. 외국 문화가 생소한 것. 비자가 없는 것은 지나가야 할 과정 중 하나일 뿐, 가로막는 그 무엇도 되지 않는다. 얼마 전 로커칫챗 팟캐스트에서, 구글 김은주님은 “산을 만나면 그저, 아 넘어가야겠구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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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 커리어와 능동적 커리어가 있다. 상황이 될때까지 버티다가 하는 수동적 이직도 있고, 내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능동적 이직도 있다. 이직을 하고 나서, 누군가는 후회하고 누군가는 행복하다. 같은 연차. 같은 직무. 같은 회사의 옆자리에 앉은 동료라도, 10년뒤 커리어가 다르다. 이직그릇이 달라서다.
이직그릇은 꼭 이직을 자주하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회사에 오래 다니면서도 자신의 자리가 확고한 사람들이 있다. 이직그릇을 갖추면 이직을 안해도 배가 부르다. 내가 언제든 마음 먹으면 능동적으로 움직일 그릇이 갖춰져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 회사에서도 더 자신감이 넘치고 실력발휘도 잘한다.
경제적 자유가 자본주의 사회의 많은이들의 꿈이라면,
두려울 것 없는 커리어 자유는 많은 직장인의 바램이다.
어떤 회사도 나의 커리어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내 커리어 자신감은 나의 이직그릇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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