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글씨가 쏟아지던 밤

1부. 빈 화면 앞에 선 아이

by 로그캐빈
토요일 밤, 저장을 누르자 화면 가득 붉은 글씨가 쏟아졌다.


대명동의 대학 캠퍼스 한쪽에 자리 잡은 DIP 사무실 창밖으로 매미 소리가 들려왔다.

팀장님과의 면담 끝에 보직이 바뀌었고, 나는 JSP와 Oracle의 핵심 로직에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독학으로 익힌 PHP는 자유롭고 유연했다.

실무에서 마주한 자바(Java)는 달랐다.

규칙은 엄격했고, 한 글자도 봐주지 않았다.

세미콜론 하나, 대소문자 하나에도 화면은 가차 없이 붉어졌다.


공채가 아니었던 나는 사수가 없었다.

저녁이 되어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우면, 그제야 두꺼운 자바의 정석을 펼쳤다.

커뮤니티에서 저장해 둔 소스 코드를 뜯어보며 저장, 새로고침, 에러 메시지를 끝없이 반복했다.

버스가 끊긴 밤이면 빈 도로를 걸으며 실패한 조인의 순서를 머릿속에서 다시 정렬했다.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내일 시도할 코드가 완성되는 날도 있었다.


몇 시간째 같은 오류와 씨름하던 밤이었다.

쿼리가 왜 틀렸는지는 알 것 같은데 어디를 고쳐야 할지 손이 멈췄다.

ON 절의 조건을 뒤집고, 서브쿼리 위치를 바꿨다.

저장. 새로고침.

몇 초 만에 숫자가 화면에 떠올랐다.

틀린 게 아니라 순서가 달랐던 것이었다.


나를 붙들어 준 건 집에서 기다리는 어머니였다.

매달 월급날이면 교통비를 빼곤 어머니 통장에 입금했다.

"군대 갈 때까지 최대한 모아놓을게요."

어머니는 고맙다는 말 대신 내 손을 잡아주셨다.


자정이 넘어 DIP를 빠져나왔다.

텅 빈 거리에 건널 사람은 나뿐이었다.



DIP 입주사 신입 사원 대상 연수가 열렸다.

주 6일 모니터 앞에만 앉아 있던 나에게 강당의 넓은 창문은 눈이 익지 않을 만큼 환했다.

갓 입사한 얼굴들 사이에서 나는 괜히 어깨를 한 번 고쳐 세웠다.

통성명을 나누던 중, 옆자리 친구의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 아래 나와 같은 생년이 적혀있었다.

그 시절 IT 업계에서 동갑내기를 만나는 건 드문 일이었다.

대부분 나보다 연배가 높았는데, 전역 후 대졸 공채를 거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자판기 커피를 두 개 뽑아 하나를 내밀며 웃었다.

"히야들 틈에서 버티느라 힘들제?"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며칠째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 사람처럼 말이 붙었다.

커피를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화제는 자연스럽게 군대로 흘러갔다.

"경력이 제일 걱정이다. 인자 겨우 코드 좀 만지는데, 2년 넘게 손 놔뿌면 다시 하겠나?"

내 한숨 섞인 말에 그 친구는 의외라는 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야, 내는 군대 문제 해결하면서 한다 아이가. 병특이라고 니 모르나?"

그 친구는 벤처 기업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 중이라고 했다.

보충역이라 비교적 수월하게 자리를 구했다고 덧붙였다.

나처럼 현역 판정을 받은 사람에게는 다른 세계 이야기였다.

"현역 TO는 쫌 힘들끼다. 대구 전체에서도 한두 명 정도라 카던데. 운 좋으면 또 불가능한 건 아이라 카더라고."

연수 시간 내내 그 친구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병역특례.

그날 처음, 그 딱딱한 단어가 귓속에 박혔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붉은 벽돌 사이로 노을이 비쳤다.


확신은 없었다.

그래도 그 기회가 대구 땅 어딘가에 하나라도 남아 있다면, 나는 거기에 매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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