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지만 그 역할을 해낸 것들에 대하여
어릴적 살던 시골마을의 지붕은 스레트로 덮여있었다. 새마을운동이 휩쓸고 가면 새마을운동 노래와 알록달록한 스레트 지붕이 남았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단열이 잘 안되는 스레트가 한국에 대량으로 보급된 이유는 지구 반대편 어느 잘사는 나라에서 대량으로 폐기한 것을 헐값에 주워왔기 때문이란다.
파란색 스레트 지붕 아래에서 19년을 살았다. 태어나서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 살았다. 바다 건너편에서는 씻긴 듯 말간 해가 떠오르고 해질녘에는 집 뒤편으로 붉은 노을이 지는 곳이었다. 풍광은 아름다웠지만 자연은 야박했다. 자연을 마주하고 산다는 건, 죽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것을 연명하기 위해 얻을 수 있음을 뜻했다. TV로 보던 짜장면을 작은언니의 졸업식 때 처음 먹었다. 국민학교 5학년으로 올라가던 즈음이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약간의 신경증을 앓고 있었고 때때로 병적으로 도드라져 서로를 할퀴고 움푹패인 상처를 남겼다. 엄마 말대로 아버지가 따박따박 월급을 받아오는 안정적인 삶을 지닌 사내였다면 엄마의 마음도 융털처럼 따뜻하고 보드라웠을까. 그건 모르겠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모든 것은 상상이니까.
그 집이 그나마 그리운 건, 빗소리 때문이다. 뚝뚝, 뚝뚝뚝 후두둑. 스레트 지붕 위에 비가 떨어지면 그 소리는 아이가 치는 작은 북 소리 같았다. 동생과 함께 쓰는 작은방에 누워 있으면 온방을 빼곡히 채운 빗소리만 들려왔고, 나는 낮인데도 어두운 방에 이불을 펴고 누워 낮잠을 잤다. 약간 쿰쿰해진 이불을 덮고 몇 시간이고 틀어박혀 잠을 잤다.
세상이 조용하다. 아무도 화를 내지 않고, 아무도 울지 않고, 아무도 고함치지 않아. 설령 그런다해도 빗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아. 자! 작은 북 소리를 들어봐. 엄마의 뱃속에서 심장소리를 듣던 때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워서 눈에 보이는 야비하고 남루한 세상도 잊아버리고 귀에만 신경을 쏟아보는 거야. 퉁퉁. 통통. 탕탕.
그래도 집이라고 우리 가족은 슬레트 지붕 아래 모여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비바람 치는 날에도 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비 한방울 맞지 않고 온전히 잠을 잤다. 스레트 지붕은 2003년 태풍 매미가 왔을 때 일부분이 날아갔는데 지붕이 뜯기는 소리는 심장을 오그라들게 할 정도로 오싹했고 뜯긴 지붕 안으로 회오리 바람이 몰려와 살림살이를 다 쓸어갈까봐 정전 속에서 촛불을 켜고 떨었다. 비가 그치고 보니 2층 집이 통째로 날아간 경우도 수두룩 했다. 지붕이 뜯기고 나니 속수무책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죽어나던 폭풍 속에서 그정도면 우리집 스레트는 선전을 한 셈이다.
비가 오면 온 몸으로 비를 쳐맞으며 그래도 할만하다고 작은 북을 통통 치던 스레트 지붕과 내 나이에 애가 넷이었고 한명의 인간으로서 비틀거렸지만 주저앉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을 아버지의 삶을 생각한다. 장마철이라 비는 계속 내리고 빗소리만 정적을 깨는 이 밤, 어설펐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낸 것들을 떠올려본다.
그 존재 안에서 내가 온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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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