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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연 Sep 11. 2016

짬뽕집에는, 아직은 사람이 있다

10년 후에는 그곳에 사람이 있을까

금요일 저녁, 짬뽕밥을 혼자 먹었다. 드르륵 미닫이 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가면, 공간은 낯익고 종업원들은 낯설다. 손님들에게 과하게 친절하지 않도록, 감정소비를 하지 않도록 교육을 했을까. 무뚝뚝하게 카드를 받아가는 모습에서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한사람의 닝겐이 들어오는구나, 짬뽕을 시키는구나, 계산은 현금이 아니라 카드로 하는구나... 그들에게 나는 오천원짜리 짬뽕이다. 포를 뜬 듯 얼굴에 붙여도 될 정도로 얇은 단무지를 젓가락으로 조심스레 들어서 입에 밀어넣는다. 단무지도 야박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짬뽕 안에는 홍합과 오징어가 바다의 향기를 내고, 배추는 달다. 소주가 땡기는 야근의 맛.

가격이 합리적이되 자극적이고, 그래도 굶지는 않았다, 밥은 먹고 다닌다는 위안을 주는 매콤한 국물이 목구멍 속으로 넘어간다. 짬뽕 국물 안에는 이번 여름에는 맡아보지 못한 바다의 냄새와 8월의 태양 아래서 무던히 견뎠을 배추의 인내심이 들어 있다.


손님들이 빠져나간 8시에 종업원들이 밥을 먹기 시작한다. 별다른 메뉴가 없지만 잠깐 자리에 앉아서 엉덩이를 붙이고 쉴 수 있다는 기쁨 덕분인지, 웃음 띤 얼굴이 보이고 간간히 농담소리도 들린다. 거울 속에 비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같이 숟가락을 뜬다. 우리는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한공간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있다. 옷을 사러 갔을 때, 옷가게의 언니들이 구석에 앉아서 밥을 먹다가, 밥을 채 씹지도 못한 채 손님을 마주하러 나올 때, 그녀들에게서 풍기는 된장찌개 냄새가 잘 다려져 행거에 걸린 옷들과 달리 너무 이질적이서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리둥절하곤 했다. 항상 로봇처럼 서 있을 것 같은 사람들, "주문 하셨어요?"라는 감정없는 멘트를 하루에 백번 이상은 했을 표정없는 사람들이 뜨거운 밥을 국물에 말아서 먹고 있다.


그 가게의 주방에는 20대의 앳된 남녀들이 짬뽕을 만든다. 몇 십년 짬뽕만 만들어온 장인같은 건 없다. 본사에서 준 재료를 매뉴얼대로 만들어 내기만 하면 된다. 누가 해도, 며칠만 배운다면 뚝딱 만들 수 있는 요리. 큰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매뉴얼화가 생명이고, 프렌차이즈의 본사 사장님의 말씀은 랜선을 타고 전국으로 이어지고, 랜선을 따라 수익을 쫙쫙 뽑아서 사장님이 강남에 빌딩을 사게 돕는다.


그러나 매뉴얼과 인간 사이에는 부조화의 간극이 있다. 10년 후에는 밥을 먹고 쉬기도 하고 가끔 주문을 잘못 받기도 하고, 컨디션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 주방장은, 아마, 없어지겠지. 먹지도 않고 투정도 부리지 않고 항상 똑같은 맛을 내는 알파고 주방장이 앞치마를 입고 있을 것이다.  "사장님 나빠요"와 "시급이 쬐끔 올랐어요"라는 말은 없다. 친절의 의미도 달라질 것이다. 금요일 밤에 혼자 오는 손님에게는, 적당한 심리적 거리감은 두되, 너무 낮은 톤으로 얘기해서 서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따뜻함이 가미된 친절 매뉴얼-3번이 시행될 지도 모른다. "아~ 여기 종업원들 딱 제 구미에 맞게 친절하고 좋네요"


적당히 배부르게 먹고 미닫이 문을 닫고 나왔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규칙에 따라 착착 돌아가는 곳에서 옆으로 열고 힘을 줘서 열어야 하는 미닫이 문은 장 불편하고, 가장 낡고, 가장 인간적이다. 사장은 그래서 미닫이 문을 달아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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