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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연 Mar 14. 2017

연애의 졸업

평온의 발견

이전에 "안 생겨요"라는 개그가 있었다.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도 애인이 생기지 않는 자기 고백을 두남자가 무대 위에서 읊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안 생겨요,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웃었다. 


연애를 하지 않는 것, 솔로로 살아가는 것이 개그의 소재가 되는 시대다. 웃긴다는 것, 웃는다는 것을 들여다보면 강자의 언어와 시대의 컴플렉스를 읽을 수 있다. 한국어가 어눌한 외국인노동자, 으악스러운 아줌마, 뻔뻔한 아저씨, 사투리 쓰는 시골남자, 뚱뚱한 여자, 못생긴 여자, 뇌가 빈 무식한 사람, 그리고 연애 못하는 모태솔로 남녀.


그들은 무대 위로 올려져서 웃음을 주는 대상이 된다.  "어쩜 저러니? 나는 쟤보다 낫지"라는  우월감이 웃음을 만든다.  같은 처지와 입장이라면, 절대 웃지 못할 것이다. 본인이 웃음의 대상이 된다고 느낀다면 오히려 아프겠지.


평균 이하의 인간.

나는 너보다 낫지.

나는 쟤보다 낫다에서,

누군가는 쟤를 담당해야 하는 사회적 게임


솔로인 사람은, 왜 내가 솔로인지, 자발적 선택이지 평균 이하가 아님을 끝없이 증명해야 한다. 독설가 고모를 만날 때, 결혼한 동창을 만날 때, 호기심 천국 거래처 직원과의 미팅에서, 심지어 오늘 처음 만난 낯선이의 질문에도.


 왜 결혼하지 않냐는 간섭같은 충고를 듣고는 하는데  "나니까 너한테 해주는 말이다"라는 태도의 당당함에 놀라서 우리가 인생의 대소사를 챙겨줄만큼  다정하고 친밀했던가 갸우뚱하고 어리둥절 할때, 허를 찌르고 "나중에 후회한다, 늙어서 외롭다"의 쓰리콤보가 이어지곤 한다. 차라리 이혼녀가 낫나는 말은 못 들은 걸로 하자.


연애와 결혼은 마트에서 사는 1+1물건이 아니다.

둘은 좋고 하나는 나쁘다는 등식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머릿 속에는,  솔로인 사람이 열등감과 결핍이 있을 것이라 단정한다.


결핍, 그런 거 없다.

같이 있으면 불이 타오르듯 뜨거워도 싸울 때는 냉기가 돌기 마련이라 평소에 활활 타올라야 하는 것이 사랑인데, 같이 있는 것이 불덩이를 삼킨 듯 숨이 컥 막히고  조용히 도망쳐서 혼자 있고만 싶다면  어떠하겠는가?


나는 여태껏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았다. 연애는 해야하는 건 줄 알았고, 솔로보다는 그 삶이 더 그럴싸해 보여서 누구든 만나려 안간힘을 쓴 적도 많았다. '사랑받고 싶다기 보다'는 뒤쳐지기 싫었으므로 남자들의 요구에 억지로 나를 끼워맞추고 어울리지 않고 달고 싶지고 않은 왕리본도 머리에 달곤 했다. 어울린다는 말 한마디 듣고 데이트하고 돌아오는 길에 "난 숏컷이 좋아"라고 혼잣말로 중얼댔다.


 세상에는 죄다 사랑 노래 뿐이고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때 주고받지 못한 사람은 짜장면으로 빈속을 채우라는 사랑병에 걸린 세상에서 나는 평균의 인간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데이트를 하면서 좋았던 적보다, 4월의 햇빛 잘드는 도서관 창가에서 책을 읽거나 산티아고 순례길 끝에 친구들과 스파게티를 먹었던 날이 더 기억에 남고 행복했다. 지금도 가끔 그립다.  나는 연애의 본질인  질투의 냉탕온탕과 밀당의 출렁임 보다는, 호수같은 평온함이, 항상  간절했고 절실했다.


내 삶이 더 출렁였으로.


 이 글은 솔로 예찬이 아니다. 간섭을 마시라는 선전포고도 아니다.  봄철 대청소를 맞아  케케묵고 공간만 잡아먹던 잡동사니를 집 앞에 간신히 끌어다 내놓으며 그 위에 붙이는 스티커다.


"대형생활 폐기물 신고필증"


봄이다. 평온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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