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연 Jul 26. 2017

[책읽는 다락방] 21번째, 모래의 여자

모래 구덩이, 그 암흑에서 노동하며 구원받다 

아베코보의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갑갑해집니다. 인간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숙명, 멍에를 매만지게 하니까요. 그러나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것 또한 이 책의 매력이 있는 책입니다. 인생이 힘들 때마다 꺼내서 읽어보는 책을, 푹푹 무더위에 찌는 여름에 한번 더 살펴보았습니다. 


■ 가상의 공간, 그러나 잔인할 만큼 사실적 

이 책은 사실이 아닌 환상의 공간입니다. 하루라도 치우지 않으면 모래톱에 묻혀서 마을이 위태로워지는 모래마을이 있을 리가 없고, 그 속에 노예처럼 모래만 퍼 나르면 살아가는 존재가 있을 리 없으니까요. 그러나 과연그럴까요. 그 속을 살펴보면 구덩이에 갇혀서 매일 노동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30대 초반의 160cm 키의 남자로 학교 선생님입니다. 주인공의 취미는 곤충채집으로 학계에 발표되지 않은 곤충을 발견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길을 나섭니다.  곤충을 채집한다는 것은, 타인의 자유를 박탈해서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다. 자신의 손끝에서 생명의 지속여부가 결정되니, 채집가는 독재자이고 신입니다. 


버스가 멈춰선 낯선 곳, 모래톱 마을의 사람들은 이 남자를 경계합니다. 마을의 우두머리인 사람들이 다가와, 숙소를 마련해 줄테니 하루 묵었다 가라고 합니다.

단 하루밖에 없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 위해, 호의를 받아들여 그는 모루 구덩이 안으로 들어갑니다. 누구의 강압도 없이 순순이 걸어 내려갑니다. 


항상 알몸으로 잠을 자는 여자


■ 낯선 사람이 베푸는 호의와 경계 사이 

여기에 사는 묘한 여자. 못생긴 얼굴은 아니고 보조개가 없으면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30대 초반의 여자가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 주위가 발갛게 부워있고 남자의 존재를 의식하며 기쁜 기색을 숨기지 못합니다. 여자가 준비한 밥을 먹으며 남자는 낯선이에게 베푸는 호의에 감사해 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알게 됩니다. 모래 구덩이에 위로 올라갈 밧줄이 없다는 것과 밧줄은 누군가 위에서 잡아줘야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덫. 남자는 제 발로 들어가 덫에 갇혔습니다. 인간은 타인을 경계도 없이 순순히 선의를 받아들이고, 속절없이 당하게 됩니다. 법륜스님은 "즉문즉설" 강연에서 이런 인간을 두고 쥐약과 쥐로 비유합니다. "쥐가 쥐약을 먹을 때, 쥐약이라고 생각하고 먹지 않는다. 오늘 웬 횡재냐하고 먹는 것이니, 나에게 과한 친절과 선물이 주어질 때는 경계해라" 


두 사람은 밤새 모래를 퍼다 나르면, 동네 사람들이 건축자재로 불법으로 내다판 뒤 내려주는 음식과 물로 삶을 연명합니다. 끝없는 노동의 삶, 하루라도 가만히 있으면 모래에 파묻히고 집이 무너져 내립니다. 일을 하지 않고 저항을 할라치면 물과 음식을 받지 못하므로 생존이 위험해지므로 저항도 할 수 없고,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도 모르니 모래 구덩이 너머 도망도 칠 수 없습니다. 



■ 타인과 교차하는 행불행

모래 구덩이의 여자는, 거대한 모래 바람에 딸과 남편을 잃고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납치된 남자가 하늘에서 떨어진다면, 남자가 아무리 불쌍하다고 해도 자신의 처지만큼 불쌍할까요.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순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무마하지는 않았을까요. 행불행은 한끗차이고 서로 인연의 관계 속에서 엮여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녀는 이 모래 구덩이에 살기 전에 걸어도 걸어도 쉴 곳을 찾지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일만 하면 먹을 것을 주고 안전하게 보호받는 삶이 예전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남자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칠지 모르나, 그녀의 삶 전체를 놓고보면 자유를 박탈당한 돼지는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거지보다 더 낫습니다. 



■ 마을이라는 공동체공동의 선(善)이란 무엇인가 

여자와 남자를 가두고 노동의 산물을 받아가는 마을 사람들. 마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노동이 마을의 전체를 위한 선(善)이라고 이야기 한다. 내 희생으로 인해 마을을 지킬 수 있다는 것, 마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언젠가 두 사람이 탈출해서 모래 구덩이를 퍼낼 사람이 없어지자, 다른 모래 구덩이도 도미노처럼 위험에 처했다는 말을 전합니다.


"하나의 구덩이가 무너지면 다음 구덩이가 무너지고 마을 사람들이 위험해진다."


처음에는 남자를 구덩이로 모는 마을 사람들은 누구일까, 돈만 챙기고 악덕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노동의 대가로 먹을 것을 제공받고 마을 사람들도 수익을 얻으며서 마을을 유지할 수 있으니 누구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논리가 정의를 뒤덮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먹고 산다는 조직의 이익 논리가 비리와 불법을 덮습니다. 



■ 구원을 기다리는 인간과 시지푸스의 신화 

이 구덩이 안에서 남자와 여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을 하며 보냅니다. 노동은 삶이 유일한 오락이자, 존재의 이유입니다. 매일 언덕으로 바위를 굴리며 올라가야 하는 시지푸스의 신화가 생각납니다.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곳에서 노동을 통해서만 존재의 이유를 찾는 인간. 절망을 이겨낼 힘도 노동 속에 있습니다. 


결국 남자는 여자가 그들의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간 틈을 타 도망갈 수 있음에도 도망치기를 포기합니다. 구덩이에 계속 멈춰있기로 한 것. 무엇이 머물게 했는지, 이 책을 덮으며 궁금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읽는 다락방] 20번째, 별에서 온 어린왕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