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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연 Feb 07. 2018

나의 비겁과 당신의 무례 사이

나쁜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나쁜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일이고, 그 다음날 잊혀졌을지 몰라도 7년이 지난 후에도 이리도 선명하게 남을 걸 보면, 나쁜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7년 전 나는 벤처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잘 나간다고 보도가 됐지만 회사의 실상은 한달살이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통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한달 벌어서 한달 먹고살았다. 그러다 공공기관의 프로젝트를 하나 수주했는데, 지방 소도시에 가서 강연콘서트를 2회 여는 것이었다. 강연자는 A 시인, B연사로, B연사는 그 당시 누구나 초대하고 싶어하는 스타강연자였다. 우리도 그를 잡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


강연콘서트의 구성은 이랬다. B씨의 40분 강연+ A씨의 30분 강연+ 두 사람의 토크쇼, 이 후 초대가수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같은 구성을 경상도에서 1회, 전라도에서 1회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고, 대행사의 실수로 프로젝트가 잘못될 경우 위약금을 수행 총액의 1.5배를 물어야 한다는 항목도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었다. (위약금의 배수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1.5배였던 것 같다) 나는 프로젝트 매니저(PM)였다.


행사 당일, A시인이 아내와 함께 도착을 했다. 그는 대기실에서 차를 마시며 기관의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B강연자가 첫번째 강연자로 무대에 오르기 5분 전이었다. 스탠바이. 갑자기 급한 연락이 왔다.  A시인이 집에 가겠다고 지금 옷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었다. 이게 뭔일인가 싶어 가보니, 진짜 A시인이 팔을 휘저으며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도저히 기분이 나빠서 못견디겠고, 자신은 지금 이대로 집에 가야겠다고 고함을 질러대며 주차장까지 걸어나가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차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욕을 했다가... 자신이 왜 B강연자보다 강연 시간이 짧으냐, 나를 어떻게 본 것이냐, 나는 절대 강연 못한다며 소리를 질러댔다. 말려도 소용없이 그렇게 10분이 흘렀다. 울었던 것 같다. 이러시지 말라고, 첫번째 강연자가 조금 있다 내려오면 바로 올라가셔야 하니 예정대로 강연은 해달라고 애원했다.


말이 전혀 통하지가 않았고,  그의 목소리는 12월 겨울밤 공기 속을 차갑게 울리고 있었다. 팔에 매달리고 애원을 하다, 끝내 아스팔트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머릿속에 위약금이 윙윙댔다.  아스팔트가 꽤 차가웠지만 차를 타고 가버릴까봐 온 정성을 다해서 빌었다. 똥파리보다 더 정성스럽게 빌었다. 나혼자로 안 되니, 주최기관의 담당자인 여자 차장도 무릎을 꿇었다.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25분이 지나 이 소란이 내부에 전해졌는지 초대가수를 데리고 온 회사의  남자 대표가 주차장으로 찾아와서 우리에게 비켜서라고 했다.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하지. 1~2분 얘기했을까... 갑자기 A시인이 웃기 시작했다. 에이전시 대표가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니 순순히 발을 떼기 시작했다. 그냥 어깨를 툭 치며 가볍게 얘기했을 뿐인데, 무슨 조화인가 싶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자기가 이런 쪽 분야에서 오래 일을 했고 공연과 강연회를 많이 하니 앞으로 불러주겠다, 이제 화를 풀어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덕분에 강연회는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소동은 있었으나, 무탈하게 끝난 상황이 감사했다.  이리 도와주는 사람들 덕분에, 위약금을 안 물게 된 것이 기뻐서 밤 10시에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도, 우리 내일은 더 잘해보자고 스텝들에게 말했다. 꿇었던 무릎이야 털면 되는 것이니까.



돈이 궁한 벤처회사의 직원이지만 그리 안해도 되는데 한푼 더 아끼겠다고 숙소는 남자방, 여자방 2개의 온돌방을 잡아서 성별로 모여서 잠을 잤다. 새벽 2시에 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나를 깨우더니 전화를 한번 받아보라는 거다. 잘 때는 비행모드로 해놓고 자는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 남자방의 스텝에게 전화를 걸어서 건너건너 나를 깨운 것이었다. 잠결에 받은 핸드폰 속에는 한 남자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말끝마다 씨발을 연발했다. A시인이었다.


집으로 갔는데도 화를 참지 못하겠더라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B보다 못하는 게 뭐냐, 사람을 뭘로 보며 쌍욕을 해댔다. 이 사실을 안다면 자신의 딸이 얼마나 속상해하겠냐, 자신의 딸 보기 부끄럽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도 했다. 새벽 2시에 낯선 여관방의 어둠 속에서 A시인의 끝없이 이어지는 욕을 들으면서, 내가 그렇게 죽을 짓을 했나... 존재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다.


"너 B강연자에게 얼마줬어? 말해. 나보다 많이 줬어? 말해. 내가 화가 나서 잠이 안 와"

"내일 오전 9시까지 B강연자의 강연료만큼을 입금시키지 않으면, 내일 강연회는 없을 줄 알아."


수화기 너머로 고성의 욕이 20분 넘게 들리니 스텝들도 모두 잠이 깬 상태였고, 뺨 맞은 듯 얼얼한 볼 위로 눈물이 흘렀다. 전화를 끊 문자를 보냈다. "죄송합니다, 돈은 구해보겠으니 오늘밤은 편히 주무세요."  그렇다. 나는 영혼을 팔아먹고 거짓의 사과를 했다. 이 무슨 경우 없고 매너없는 짓이냐고 했어야 하는데, 위약금에 억눌려 있었고, 그가 유명한 사람이므로 화를 내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내게 주어진 6시간 30분. 오전 9시까지 그 큰 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욕을 들어서 울고, 막막해서 울었다.


다음날에 회사의 자금을 바닥까지 탈탈 털어서 강연료를 어찌어찌 맞출 수 있었다. 용역수행비를 선입금 받지 않은 상태라 회사의 전재산을 다 털었다고 볼 수 있다. 계좌번호를 물어보려고 아침 9시에 전화를 걸었더니, 9시까지 입금하지 않으면 안 오겠다고 어름장을 놓던 양반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중에 문자로 계좌번호를 받았고 전액을 송금했다. 그러고는 12시쯤 연락이 왔다.


너희들의 정성과 마음을 알았다. 내가 100만원만 더 받고 나머지는 돌려줄게


그렇군. 그분은 정성과 마음이 필요한 분이었네.... 섬진강의 모래알처럼 맑은 분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동심으로 노래하는 분이 돈 몇푼 때문에 그러진 않았겠지라고 나를 억지로 이해시키려, 튀어나오는 욕을 참으려, 혀를 깨물었다.



2일차 행사도 다행히 잘 마쳤다. 이제 서울로 올라올 일만 남았다. 스텝들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고 있는데, 그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러더니 남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아직 무대의 스포트라이트가 꺼지지 않은 무대 가운데에서 자신이 미안했다며 손을 꼭 잡아주는 것이 아닌가. 그 순박하고 진실한 얼굴을 하고선. 마지막에 이 말도 잊지 않았다.


미안은 한데, 너희들이 그러지 않았으면 안그랬을거야. 앞으로는 그러지마.


나는 뭘 그러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른체, 죄송했다고, 이해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답을 했다.

그 죄송함에 대해 '7년' 동안 생각해 왔다. 아스팔트에 무릎을 꿇을 만큼 그의 명성에 누를 끼쳤는지, 새벽의 전화를 받아서 쌍욕을 들을만큼 중죄를 지었는지 찬찬히 돌아봤다. 무릎을 꿇은 것은 내 의지로 한 것이니 차치하더라도, 새벽 2시에 쌍욕을 왜 들어야 하는가. 그건 무례하다.


나는 그 무례함 앞에 나약하고 비겁했다.

이 글은 그에게 쓰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은 비겁했던 나에게 쓰는 것이다.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 하나 참으면"을 연발하면서 내 자신을 깊게 상처입혔고, 그 상처들이 더깨처럼 무겁게 쌓여 어둠 속에 주저 앉게 했으므로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한다고 다짐하며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권력에 취해, 똥물을 들이키는 어른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글을 쓴다.

7년이 지나서야 말한다. 나는 죄송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그는 나에게 미안해야 한다.

사과해야 할 사람이 진심어리게 사과하도록 어둠 속에서 나와 목소리를 내는 것,

용기를 내는 것이 Me, too운동의 본질임을 깨닫는다.


섬진강에는 똥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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