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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연 Apr 15. 2016

닝겐의 발을 핥는 노란털 고양이

12시 막차타고 퇴근하는 닝겐들아 고생이 많구나


가끔 사람이 그립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설 때 누군가 문을 열어 주며, 왔어, 하고 말을 걸어줬으면 하지만, 실상 이루어진다면 혼자 있고 싶어 다시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글 것이다. 동거인이란,  한몸 건사하기 힘든 나로서는 무리한 도전이란 걸 알지만 따스하고 몰캉거리면서 체온이 있고 독립적인 무엇이 필요했다.


그러다 떠오른 건 고양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말하길, 고양이는 개와 달리 집으로 돌아온 주인을 향해 돌진하거나, 오늘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줄 알아, 나 안보고 싶었어, 한번만 쓰다듬어주면 안 돼,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옆집에 사는 양옥(수컷, 10개월)이란 녀석은 주인이 퇴근하고 돌아와 문을 열려고 하면 문으로 뛰어오가는 하되, 옆에 놓인 자신의 인형을 앞발로 한두번 긁어서 애정의 열기를 식힌 다음 주인에게 온단다. 요물이다. 인간도 하지 못한 감정조절을 고양이에게 배웠다. 그러니 주인은 폭풍 애교를 부릴 때면 눈을 떼지 못하고 시공간이 잠시 멈추는 경험을 했다가, 영상으로까지 찍어서, 아무 연관도 없고, 난생 처음 말을 거는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우뗘? 우리 고양이 정말 귀엽지 않어? 갸르릉 거리면서 내 발을 핥을 때 내가 옴팡지게 행복했다니까. 도도함의 벽이 무너지고 주인에게 열리는 잠시 동안의 시혜. 폰 속에는 딸래미 사진보다 고양이 사진이 더 많아 보였다.




아는 분은 개를 두마리 키우는데, 그 애들이 어찌나 귀여운지, 밤에 작업하고 있는 자신에게 다가와 얼른 누우라고 칭얼대고 계속 이불 쪽으로 끌고가면, 제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덮어놓고 자야 한단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심쿵을 계속하니, 안그래도 부정맥이 있는데 더 심해지는 게 아닐까하고 의사선생님과 상의까지 할 정도라고 했다. 시골에서 자란 내게 개는, 마당에서 눈비를 맞는 갑을병정에도 못드는 존재였다. 도시는 역쉬 다르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듣는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작은 고양이 한마리를 그린다. 털은 노란색이고 팔뚝 크기만 하다. 내가 회사에 있어도 집에서 혼자 잘 놀고, 가끔 창가에 앉아 먼길을 바라보며, 닝겐들 산다고 고생하네, 하며 아메리카노를 여유있게 한잔 한다. 주인은 항상 밤 12시에 들어오고, 아침에는 부스스하게 나가버린다.



털고르는 시간도 없는, 고양이보다 못한 년이라고, 내가 그렇게 갸르릉 거리며 충고를 해도 들어먹질 않는다. 오늘도 지하철 막차를 타고 오나보다. 나는 밤잠을 한번 깨면 쉽게 다시 잠이 들지 않으니, 기다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닝겐을 기다려 본다.  


문이 열리고 닝겐이 온다. 뭐 사왔나 싶어, 혹시나 말이다, 살짝 옆으로 다가가는데, 닝겐의 발에서는 절인 생선냄새가 난다. 생선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는 닝겐의 발을 살짝 핥아본다. 아 달다. 이 맛. 도대체 인간의 발은 어떻게 이런 냄새와 맛이 날까 신기해 하며 닝겐의 면상을 힐끗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닝겐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잽싸게 폰을 꺼내 내 정수리를 찍는다. 닝겐이 웃는다. 아주 좋아 죽고 있다. 불쌍한 닝겐. 발에서 절인 고등어 냄새가 날때까지 오데서 뭘 하면서 굴러먹다 왔니. 갑자기 안쓰럽다. 오늘 밤에 좀 안아줘야겠다.


노란털 고양이를 한마리 분양받고 싶은 밤이다.

창가에 앉아 먼길을 바라보며, 닝겐들 산다고 고생하네, 하며 아메리카노를 여유있게 한잔 한다.

고양이 한마리 분양하고 싶어하는 모쏠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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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도연

사진 | 구글 공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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