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에 두개만 주세요
진서도너츠.
집에 오는 길에 지하철 출구를 나와, 버스 정류장의 붐비는 사람들 틈 사이를 지나치면, 모퉁이 왼쪽에 진서도너츠가 있다. 가게는 아니고 노점이다. 작은 바퀴가 두개 달린 전동차 위에 너비 180cm , 폭 90cm 가량의 유리 진열통이 달려있고, 발판 위에 아줌마를 태우고 이동할 수도 있다. (이 희한한 물체가 달릴 때면, 그 위에 올라선 아줌마는 웬만한 남자보다 키가 커지고 다 팔았다는 기쁨이 얼굴에 만연하니, 미지의 적을 무찌르러 가는 잔다르크 같다. 나는 봐도봐도 신기해서 아줌마가 사라질 때까지 보곤한다)
도너츠는 천원에 세 개.
꽈배기와 도너츠, 고로케 등 4종을 파는데, 맛은 천원에 두 개 팔아도 될 정도다. 너무 밑지고 파는 것이 아닌가 싶어, 저는 두개만 주세요, 하고 싶지만 참곤 했다.
오늘 지하철 출입구를 나오는데 아줌마가 모퉁이에 서 있었다. 아줌마가 나를 기다린 것도 아닌데, 우리가 안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낯선 사람들만 지나치는 도시에서 익숙한 사람을 볼 때의 기쁨을 느꼈다. 막차를 탔으므로 밤 12시 30분인데 아직도 도너츠가 10개 정도 남아 있었다. 아줌마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눈만 끔뻑이며 행인들 사이에 서 있었다.
다 팔아야 퇴근이다. 야근이 참 기약이 없다.
사람들도 무심하지, 얼마나 한다고 좀 사가지.... 뭔가 야속한 마음이 올라왔다. 모두 포장해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지갑에는 신용카드만 있었다. 현금이 없었다. 백원도 없었다.
걸어오며 난... 마음이 왜 이리 불편했을까. 사주지도 않을거면서 말이다. 저리 열심히 사는데 아줌마는 부자가 됐을까, 천원에 세 개 주는 도너츠를 당췌 몇 개를 팔아야, 삼성전자 연구원 정도의 월급을 받을 수 있나 어림잡아 계산을 해보기도 했다. 반죽을 해서 빚고 튀기고 팔고, 하루의 몇시간을 쏟아야 할까.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가장 직설적이고 뼈아픈 말을 잘하던, 서울대를 나와 머리가 좋고 통찰력도 있다고 자타가 인정하던 팀장이 말했다.
"부지런하다고 부자가 되는 게 아니야. 그러면 시장통에 할매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게?"
뜬금없이 그 팀장에게 묻고 싶은 밤이다. 그럼 어찌해야 되나요? 열심히 살라고 배웠는데, 농땡이 부리지 말라고 했는데, 울엄니는 남의 돈은 쉬운 게 아니라고 나를 가르쳤는데, 어찌해야 하나요.
천원에 세 개 주는 진서도너츠
- 한 개 천원은 제과점에서나 할 일이구요,
- 두 개는 나름 소문난 맛집에서 할 일이구요,
- 세 개는 줘야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사 먹지 않겠어요.
아줌마는 착하고, 그리고 참 순진하다.
아줌마, 천원에 두 개만 주세요.
글 | 김도연
그림 | 김도연
이 글은 북촌 사는 다락방 구구씨의 일상그림일기 입니다. 다락방 구구에서는 함께 읽는 책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