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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연 Apr 30. 2016

넌 이뻐, 그러나 여기는 아니야

지하철 풀메이크업을 지켜보며


토요일에 출근하려니 눈꺼풀이 무겁다.

이렇게 몰골이 추뤠한 건 주말의 특권 아니겠어요, 라는 포스를 풍기며 지하철에 앉아 있었다. 주말의 지하철은 한산하다. 눈을 살포시 감고, 고고한 김훈 선생님도 언급하신, 밥벌이의 고단함에 잠시 도취될 때였다.


귀를 내리꽂고 중추신경과 말초신경까지 쏠리게 만드는 소리. 쩝쩝. 이건 필시 입을 반쯤 벌리고 쫄깃한 무엇을 앞니로 자르고 어금니로 짓이길 때 나는 소리다. 인간이 낼 수 있는 박쥐소리. 이 정도의 쩝쩝거림이라면, 학창시절 같이 밥먹겠다는 친구도 없을 수준이다. 내 상념을 깨우는 자가 누구요, 하며 눈을 뜨니, 앞에 앉은 여자가 쑥떡을 먹고 있다. 손바닥만한 둥근 쑥떡이다.


그래. 먹을 수 있다, 떡은 영원하지 않다, 떡은 하나 뿐이다, 나는 관대하다, 우리는 모두 설국열차의 냄궁민수이니 토요일에 아침도 굶고 출근하는 그녀를 이해해야 한다며 나를 다독였다. 그렇게 떡을 다 먹었다고 안심했을 때, 그녀가 가방에서 쑥떡 하나를 더 꺼냈다.


그래, 하나는 배가 고프지, 손바닥만한 떡이잖아, 귀가 안 들린다, 안 들린다, 나는 관대하다를 되풀이 하고 있었는데... 가방에 손이 들어가 꾸물거리며 뭘 찾더니, 다시 쑥떡을 건져 올린다.


아. 씨바.


입에서 새어나오는 단말마!

불안감! 저 가방에 마술주머니가 있어 떡이 멈추지 않고 나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터무니 없다. 안다. 하지만 하이톤의 쩝쩝거리는 소리가 이성마저 마비시켰다. 그녀는 세상의 주인공이었으므로 신음하는 우리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떡은 3개로 끝났고, 나는 안도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어디쯤에 왔나 하고 눈을 떠서 주변을 살피다, 그녀의 변장을 지켜보게 됐다.


메이크업 베이스을 모공이 사라지게 하고

파우더를 피부가 모찌떡이 되도록 톡톡 두드리고

눈두덩이에 분홍빛 셔도를 발라 화사하게 하고

눈썹을 양쪽이 맞도록 거울을 봐가며 그리고

클레오파트라도 울고가게 속눈썹을 올리고

우선 립밤을 발라 촉촉하게 만든 입술 위에

붉은빛 립스틱을 덧 바른다.


20분이 더 걸린 변장의 시간.

나는 변탠가, 안보고 싶은데, 왜 텔레비전을 관람하듯 그녀를 보고 있는가. 그녀는 나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눈이 마주친다 해도 본인이 하던 일에 다시 집중할 뿐이었다.


눈화장까지 마쳤을 땐, 검붉고 창백한 입술이 심하게 도드라져서, 한올한올 올리는 마스카라 작업은 나중에 하라고 맘 속으로 명령하기도 했다.

"어서 입술에 뭘 발라! 어서" 입술이 붉게 물들었을 땐, 마무리지었다는 안도감까지 들었으니, 나는 변탠가! 나는 누군가.


그녀는 화장을 다 하고 폰을 꺼내 셀카를 찍기 시작한다. 오늘따라 화장도 곱게 먹은 모습이, 여간 마음에 드는 게 아닌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손가락으로 수줍게 브이까지 만들어 셀카를 찍어댔다. 얼짱 45각도는 기본.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그 표정, 성인여자에게서 그런 표정을 오랫만에 봤다.


셀카를 찍은 뒤 폰을 꼬물거리는 걸로 봐서 sns에 올리는 듯 하다. 거기까지 마쳤을 때 내릴 역에 도착한 듯,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짧은 치마로 한껏 멋을 낸 그녀.

뒷모습을 보니, 치맛단 아래로 터진 실밥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친구에게 점심을 먹으며 아침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달리 생각해보면, 참 시간을 짜임새 있게 쓰는 사람이네요.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하철에서 식사도 하고 화장도하고, 이렇게 부지런하게 사는 내모습을 찍어 페이스북에 자랑삼아 글도 올리니 얼마나 알찬 삶입니까! 아마 그 여자는 본인이 한 순간도 허투루 안쓰는 사람이라 자부할 걸요."

"그럼 나도 이 순간이 즐겁고 밥이 얼마나 맛좋은지 몸으로 한번 보여줄까. 쩝쩝 어때?"

"... 전... 괜찮아요 하하"



모든 것이 생중계되는 세상에 사니

시선을 즐기는 그녀는 당당하고

나는 그 모습을 다 지켜본 뒤

"싫어요"를 누르고 있다.


글 | 김도연

그림 | 김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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