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퇴근.

by 로그모리

'나 알바 끝나면 잠깐 보러 가도 돼?'


"차 끊기는데, 진짜 잠깐도 괜찮아?"


'응, 너만 괜찮으면 잠깐이라도 보고 싶어.'


"나는 좋은데.."


'그럼 됐어. 끝나자마자 전화할게.'


5시간이든, 15시간이든.

퇴근 후 5분이 나를 충만하게 만들었다.


잠깐 보기 위해 숨이 차도록 달려가던

그날의 나는, 분명 웃음을 띠고 있었다.


"왜 뛰어왔어. 천천히 오지."


'아냐. (헉헉) 나 괜찮아 (헉헉) 많이 기다렸어?'


짧은 만남이 그리도 소중했다.

아쉬움에 집과 정반대편인 그의 집으로 따라갔다.


걱정하는 마음을 달래주며

괜찮은 척 피씨방에서 지새운 밤이 많다.


'나 원래 게임 좋아해. 잘 때까지 전화하자.'


무엇이 중요한가.

잠들어가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끝끝내 걱정하지 말라 당부하고

나는 홀로 몸을 웅크렸다.


게임도.. 힘이 있을 때 할 수 있다.

제대로 잘 수 없는 환경에서 피곤은 쌓여간다.


전혀, 진심으로 상관없었다.

지금의 이 모습으로, 1시간을 더 볼 수 있었으니.


나의 퇴근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대부분은 억지로 일을 하고 있으니.


본인의 사명으로 일을 하는 것은 판타지에 가깝다.

비교적 쉬운 접근도 있다.


무언가,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는 것.

내가 힘든 시간을 투자로, 위한 것으로 치환한다.


아마 나의 처음은

피씨방에서 밤을 새우던 때였다.



물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배우고, 즐기고자 노력한다.


다만 사람이란 게, 신체적 정신적 체력이

제한되어 있기에 항상 그럴 수만은 없다.


넘어지기 전에 나를 붙잡아주는 것이

'누군가를 위해서' 라는 생각이다.


때로는 순수한 의지였고

때로는 다소 불순한 핑계였다.


아무렴 어떤가.

더욱 현재에 집중하고 나아갈 수 있음은 분명했다.


동시에 다른 순간에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음은

나의 마음에 깊이 자리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나는 왜 그를 위해 노력하는가.

그 처음을 떠올려보자.



마음 역시도 지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처음 마음먹은 것은 변하지 않는다.


지쳐가며 어느새 원망으로 돌아서다가도

초심을 들여다보면, 순수했던 마음이 남아있다.


나는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나가는 모습이

좋아서 지금의 일을 이어가고 있다.


숨이 찰 만큼 전력질주를 하여

보러 가던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저 그 짧은 순간을 보기 위해

그 행복을 잡고자 애썼다.


대개 외부의 요인으로 흐트러진다.

주변의 압박, 편견, 재정적 위기 등등.


그럴수록 나는 초심을 한 번 더 보기를 권한다.

우리의 시작은 순수하고, 진솔했으니.



대개 염세적인 시선을 가지고 산다.

무의미의 연속이고, 억지로 하는 것들 투성이라는.

(내가 그렇다.)


그럼 왜 그러고 살아?

라는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초심을 들여다본다.


억누르고 잊으려 했던 감정이 떠오르며

나의 행동에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한다.


단순한 행동을 넘어서,

감정이 담긴 행동으로 변화한다.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선택한 모습들이 펼쳐진다.


지키려는 자가 더 강하다 했던가,

내가 지키고자 하는 대상을 더 명확히 해보자.



나는 나를 지키려 했고,

누군가의 약속을 지키려 했으며,

누군가의 삶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꼭 거창할 필요 있을까.


나는 가끔 홀로 맥주를 마시는 시간이 좋고,

가끔 기분 내어 드라이브하는 것이 좋고,

가끔 눈 마주치는 바나나우유를 마시는 것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할 수 있도록.

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지켜간다.


내게 초심은, 설렘이자

나를 다시 일으켜주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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