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망쳐온 것들 02화 - 서립 작가님
https://brunch.co.kr/@seo1ip/95
'잇글 - 글과 글 사이를 잇다' 매거진 입니다.
서립 작가님의 글을 본 후, 존경의 마음을 담아 적습니다.
청춘을 표현하는 말들은,
대개 화창한 봄 날을 연상케 한다.
스스로도 청춘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찬란하고 좋다는 식의 표현을 붙였다.
이미 겪을 대로 겪으며 단단해진
지금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글쎄, 나의 모든 청춘이 그랬을까.
돌아보는 그 시절의 모습은 그렇지만도 않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고 설레는 순간에는
당연히 양면의 모습이 자리한다.
현재 나에게 청춘에게 말을 건네라 하면
자연스레 희망찬 메시지를 던질 것이다.
다만 과거의 내 청춘에게 말을 건네라 하면
보다 위로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나오리라.
적어도 한국에서 자란 이들은 공감하리라.
스무 살 되면 하고 싶은 것 다 하라는 말.
우리의 스무 살은 일종의 계약과 같았다.
모든 것을 그날을 위해 참아야 한다는, 유토피아.
스무 살에 대한 동경과 희망으로 가득한 채
맞이한 스무 살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분명 자유의 향기가 느껴짐에도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구속들이 등장한다.
이건 다시 어른의 책임으로
차마 읽지 못했던 계약서의 뒷면처럼 찾아온다.
이를 청춘이란 이름 아래 당연하게 치부하는,
그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작가님의 표현을 빌려오면.
'청춘은 찬란한 것이 아니라,
찬란해야 한다고 믿으며 버티는 시간'
모든 것이 생소하고 어렵기만 한 시간,
그 안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아마도 지금 우리가 말하듯
청춘은 찬란한 거야, 라며 믿을 수밖에.
다시 생각해 보면, 시간이 지나 옅어졌음이 아니라
당연히 아플 것을 알고 건네는 이야기가 아닐까.
각자의 삶이 다르지만,
결국 청춘은 모두 아프고 그럼에도 빛나기를 바라기에.
청춘이라는 이름 아래 보호, 무시받던 시간들.
그 안에서 결핍도, 강한 마음도 생겨났다.
누군가 알려줘서는 절대 알지 못할 것들이
잊을 수 없는 형태로 몸에 새겨진다.
나의 청춘은 원치 않는 경험이자 배움이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의도도, 뜻도 알고 느껴왔다.
다만 그때의 내게 조금 더 친절할 수는 없었을까.
내 청춘으로 자라난 마음일지 모르겠으나,
찬란한 이들은 되도록 덜 아프게 맞기를 바란다.
대책 없이 찾아오는 순간들에 맞서
피하지 않고, 크게 다치지 않기를.
서립 작가님의 글 마무리에 쓴 표현을 빌려온다.
'성장이라 믿으며 무너졌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비로소 '나'라는 사람을 조금씩 알아갔다.'
우리는 때때로 조급함과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남들이 하기에 나도 그래야 한다는,
쟤는 하는데 나는 왜 안 되냐 하는.
경험이 없던 시절, 우리는 경험에 간절하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생겨난 결핍은 비로소 나를 완성한다.
불완전함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글을 보는 그대도, 쓰고 있는 나도.
가끔 실없는 생각을 떠올린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고치고 싶은 순간은?
끝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이내 웃으며 마무리 짓는다.
나는 돌아가지도, 고치고 싶지도 않다.
그 시간들 위에 쌓인 지금의 내가 썩 마음에 들기에.
고쳐봐야, 그 마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그저 나를 좋아해 보기로 다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