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일부러 맞아본 적 있는가.
장대비가 내리는 날
굳이 맨 몸으로 비를 맞는 것.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자
그 자체로 낭만이다.
지금도 가끔
집 근처에서는 맞으려 한다.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무슨 소리를 하나,
굳이 왜 그러나 싶을 수도 있다.
물론 나도 처음 들었을 때 그랬다.
왜 그런 미친 짓을 하는지.
당연히 우산을 펼치려던 내게
지퍼백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핸드폰이랑 지갑 담아, 걸어가자!'
준비성이 철저하다고 해야 할까,
살뜰히 내 몫의 지퍼백을 챙겨줬다.
반짝이는, 흔들림 없는 눈망울은
그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나는 홀린 듯 동참하기로 했다.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 빗소리 속으로
우리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쏴아아아
타타타탓
거센 빗소리로 걸어 들어가니
온갖 새로운 자극이 전해졌다.
차가운 비는 금세 내 몸을 적시고
생각보다 무거운 비의 타격감을 느끼고
눈을 뜨지 못해 드문드문 앞을 보았다.
'야 이거 맞아? 으어억'
"어 맞아 10초만 있어봐"
진정으로 미친 사람이구나 생각할 때쯤
전혀 새로운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편안해졌다.
일부만 젖은 옷은 불쾌했으나
전부 젖어버린 옷은 몸에 착 감겼고
당황스러움에 뜨지 못했던 눈은
어느새 안정적으로 앞을 보고 있고
아프다 싶던 비의 타격감은
리듬 있는 마사지처럼 느껴졌다.
이게 뭐지, 왜 괜찮지 라 생각할 때
친구는 웃으며 '거봐, 좋지!' 라 말했다.
해보지 않은 이들에게 비유하자면
아마 수영과 비슷한 것 같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는
차가울 것 같고 무섭지만
막상 물에 머리까지 담그고 나면
편안함이 느껴지는 기분.
나는 이 기분을 이렇게 표현한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젖어버린 상태.
몸도 마음도 태도를 바꾼다.
이왕 젖은 거 즐겨버리자, 라고.
어딘가에 Dive-in 한다는 것은
우리의 두려움과 망설임을 잊게 한다.
특히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다이브는 두려움이 큰 만큼 더 짜릿하다.
비를 맞아도 된다라는 개념은
내게 아주 큰 용기를 주었다.
당연히 피해야만 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배웠던.
비는 그런 존재였다.
막상 마주하여 맞아보니 달랐다.
생각보다 별 거 아니었고
생각보다 편안했다.
이후 나는 모든 행동에 앞서
흠뻑 젖는 행위로 시작한다.
마치 비에 온몸을 적시듯
다 젖어버린 후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니.
몸도 마음도 준비가 되는 상태를
인지하여 만들어 낸다.
물이 두려운가?
머리까지 담그면 된다.
흙이 두려운가?
바닥에 한 번 구르면 된다.
아플 것이 두려운가?
그럼 먼저 맞아보면 된다.
몸도 마음도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준비는 직접 경험으로 채워진다.
두려운 것이 있다면
미리 알려주면 될 일이다.
물이 두려워 맨 몸으로 잠겨도 보고
흙이 두려워 맨바닥에 굴러도 보고
아픔이 두려워 먼저 맞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몸과 마음은 평온을 찾아간다.
두려운가?
해보면 된다.
기회가 된다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빗속을 걸어 보기를 추천한다.
별 거 아닌 행동이지만
깨달음은 클 것이라 장담한다.
두려움을 맞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고 쉽다.
마음이 불편하여 차마 행하지 못할 뿐.
낭만을 안겨준 친구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비가 올 때면 일부러 걸어서 집에 간다고,
너도 꼭 해보라 권했던.
덕분에 나는 기꺼이 비를 맞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내게 비는 불편함이나 두려움이 아닌
그저 지나는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움츠리고 있던 과거의 내게,
두려움을 마주한 그대에게.
까짓 거 한 번 푹 젖어보자고
별일 없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가?
비 맞으러 나가자. 10초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