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O
time, place, occasion
때와 장소, 경우에 맞추다.
보통 패션에 대입하는 개념이다.
나는 감정에도 TPO가 있다고 본다.
같은 표현도 다르게 느껴지는 순간들.
감정의 TPO는 반대로 접근한다.
상황에 맞춰 입는 패션과는 달리,
표현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단순한 예를 들자면,
힘내 라는 단어.
미친 듯 노력하는 중에 잠시 지친 이에게
힘내, 할 수 있어! 라 건네면 응원이 되고
억지로 하고 있는 중에
힘내, 할 수 있어. 라 건네면 조롱(?)이 된다.
아 물론 어감이 중요하다.
하지만 표현은 똑같으니까.
이렇듯 우리의 감정은 단어나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적절한 상황에 말할 때 그 힘을 발휘한다.
이 기묘한 순간들을 겪으며
대체 왜 그럴까 고민해 왔다.
놀랍지 않은가.
말로도 글로도 감정이 전달된다는 사실이.
당연한 말 같지만 새삼 놀랍다.
감정도 의도도 전부 담아낼 수 있다는 게.
사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결국 흐름을 읽고 관심을 가지면 될 일이다.
표현이 어떻든 상관없이
마음을 전할 수 있으니까.
사람이 이렇게 재밌다.
또 다른 측면.
감정을 내가 느껴도 될 순간이 있다.
이 역시도 단순한 예를 들자면,
웃참 이 되겠다.
차마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웃음이 찾아오는 순간.
온몸을 비틀며 참아내지만
눈을 마주치는 순간 터져버리는.
나의 감정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대화가 이어진다.
이는 때로 뜬금없는 소리를 뱉듯
산통을 깨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감정의 TPO는 정답이 없다.
순간만 있을 뿐.
나는 감정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다.
타인의 감정은 예민하게 알아차리지만
나의 감정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른다.
알지 못하기에 그런 걸까,
나는 감정을 억누르는 게 익숙하다.
맞지 않는 때와 장소에, 상황에
불쑥 튀어나오면 안 되니까.
내가 감정을 대하는 방식은
타인을 통해 배워가는 과정이다.
마치 TPO에 맞는 패션을 공부하듯
TPO에 맞는 감정을 배워간다.
다행히도 진전이 있다.
익숙한 상황에서는 나의 감정을 말할 수 있으니.
동시에 꽤나 감정적인 사람이다.
스스로 이해하는 상황에서만큼은.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억누르고 살피게 된다.
이해가 되는 상황에서는
불 같이 타오른다.
때때로 나의 이런 행동들이
낯설고 무섭게 느껴졌다.
글쎄, 지금은 조금 다르다.
참아야 할 때도, 표출해야 할 때도 있으니까.
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역설을 안고 살아가는 시간들이.
어느 날에는 스스로를 이상하다 여겼다.
당연한 듯한 감정들을 알지 못했으니.
어느 날에는 스스로를 이해한다 여겼다.
모를 수도 있고, 알 수도 있으니.
이런 순간들이 쌓여와서일까,
나는 감정을 원하는 만큼 표현하려 한다.
감정의 TPO에 맞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