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대신
보리차 마시기.
자극적이고 익숙한 것들 대신
슴슴하고 낯선 것들로 채우기.
습관처럼 마시던 맥주가
어느새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고
입가심이라던 녀석은
어느새 병적인 집착으로 이어졌다.
문득, 생각해 보았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술을 마시는가.
퇴근 후 맥주 한잔!
이라는 즐거움은 사라진 지 오래다.
퇴근 = 술
감흥 없는 자연스러운 루틴이 되었다.
이 기묘한 괴리감은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생각을 확장했다.
감흥 없이 이어지는 루틴 같은 행동들
이를 교체할 수 있는 새로운 행동들.
매일 술을 마시는 습관이
매일 차를 마시는 행동이 된다면?
물론 다양한 후보군이 있었으나,
편의점에서 보리차와 눈이 마주쳤다.
마침, 맥주와 보리차다!
이게 운명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바로 집에 들어와
보리차를 탈 준비를 했다.
가장 먼저 바뀐 건
숨어있던 텀블러를 꺼낸 것이다.
텀블러가 생겨도 쓰지 않던 내가
굳이 텀블러를 찾아냈다.
따스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 주고
자리도 적게 차지하고 번잡하지도 않다.
언젠가 다도를 배우고 즐기며
더 우아한 나날을 꿈꿔보기도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던 내게
텀블러와 보리차는 혁신에 가깝다.
냉장고에서 외치는 맥주의 목소리가 들리다
따스한 보리차의 목 넘김에 사그라든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했던가,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하며 살아왔다.
사실, 거창한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게 언제인지 기억하는가.
...
일단 고민을 하고 있다면
안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올빼미처럼 밤을 무대로 활동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새벽에 일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맥주를 귀가와 동시에 마시던 사람이
하루쯤 보리차로 바꿔 마실 수는 있다.
나는 보리차를 마심으로
나를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
거창한 인간 개조는 모르겠다.
사소한 행동 변화는 해보겠다.
맥주잔 대신 텀블러를 든
타격감 대신 밍밍함을 마시는.
보리차의 여정을 통해
달라지는 변화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