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대신 텀블러

by 로그모리

출근길에는 보통 아아 한잔을 시켜

냉수를 들이켜듯 마시며 하루를 열었다.


냅다 꽂히는 카페인에

몸이 화들짝 놀라 움직였다.


아침의 풍경이 달라졌다.


눈을 뜨면 씻기 전 물을 끓이고

출근 준비 후, 텀블러를 챙긴다.


텀블러에 보리차 티백을 담아

뜨거운 물을 부어 집을 나선다.


이 사소한 루틴이

너무도 소중하다.



보리차를 마시겠다 생각한 후

집에서 텀블러를 찾아보았다.


소주잔, 맥주잔, 소맥잔,

위스키 샷잔, 언더락 잔 등등


술잔만 50개는 넘는 집에서

처음 떠올려보는 생각이었다.


막상 찾아보니, 선물 받았던

텀블러가 몇 개 있었다.


선물을 주던 이는 이런 생활을

미리 알고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새삼 떠올리며 고마움이 차오르며

텀블러를 소중히 씻었다.


사용하며 담긴 추억은 아직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생길 추억에 감사하며.



나는 루틴이 없는 사람이었다.


순발력이 좋은 편이라 생각하고

때문에 벌어지면 해결한다는 마인드.


자연스레 흘러가는 이 흐름은

내게 특별한 불편함을 주지 않았다.


보리차를 마시며 텀블러의 루틴이 생겼다.


일종의 참선을 하는듯한 기분으로

매일 아침 차분히 물을 끓인다.


어쩌면, 작은 루틴들이

보다 더 단단하게 해주지 않을까.


옅은 기대감이 피어오르며

괜스레 미소를 짓는다.



생활하는 방식이 생각에 영향을 준다.


부딪히고 나서 해결하는 방식은

언제나 긴장해야 하는 몸을 만들었다.


때문에 이유 모를 피곤과 예민함이

지나온 시간 내내 있었던 듯하다.


몸에 대해서는 유독 무딘지라,

스스로 힘들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작은 루틴이 생겨 물을 끓이는 아침은

내게 미리 하루를 준비하도록 해준다.


묘하게 의지되는 친구 같은 느낌도 들고

오늘도 잘 부탁한다며 말을 건네고 싶다.


항상 출근하며 들르던 편의점이나

카페 사장님들에겐 다소 미안하지만


꾸준히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건

너무도 큰 행운과도 같다.


덕분에 스스로 보다 안정되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때때로 우리는 반대의 상황에서

지나온 시간들을 깨닫기도 한다.



가끔 생각이 일회용으로 스쳐가는 듯한

아쉬움과 헛헛함이 생겼었다.


번쩍이는 생각들도

나중에 떠오르겠지


내가 한 생각인데 뭐!

라며 사라졌으니.


꾸준히 글을 적어가면서

전혀 다름을 느끼고 있다.


생각이 떠올랐을 때

적어내어 남겨두지 않으면


다른 순간에 절대로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마치 아침에 물을 끓이고 텀블러를 챙기듯

매일 글을 통해 나의 생각과 마음을 살핀다.


가끔은 하기 벅찰 때도 있지만

쓰고 나서 느끼는 벅참이 더 크다.



나는 한 번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

일회용에 가까울 수도 있다.


이를 붙잡아 다시 생각하며 적어내면

항상 들고 있는 텀블러처럼 곁에 남는다.


물론, 언젠가 지금의 텀블러는

쓰지 않을 때가 올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나도

어느 순간 변화할 것이다.


아무렴 어떤가.


그날들의 나는 이런 텀블러를 애정했다.

순간마다 붙잡은 나는 절대 흩어지지 않는다.


변화한 모습에서도

루틴으로 남아 여전히 존재한다.


앞으로 맞이할 날들에서도

끝없는 질문과 고민이 이어질 테니.


일회용이 아닌, 텀블러처럼

나를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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