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고 취기가 오르면
생각도 행동도 확장되고 발산한다.
차를 마시고 따스함이 퍼지면
생각도 행동도 정돈되고 수렴한다.
이미지로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술자리에 모여 앉아 있는 모습,
차를 두고 모여 앉아 있는 모습.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실제로 해보면,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학창 시절 수학시간에 배웠던
발산과 수렴 기억하는가.
함수의 극한
왜인지 모르겠으나
극한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매력적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발산보다는
수렴이 더 좋았다.
그 마저도 잊은 채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갑자기 떠올랐다.
이런 게 있었구나!
나는 발산하는 사람일까, 수렴하는 사람일까.
고민의 결과는 빠르게 나왔다.
나는 끝없이 발산하는 사람이다.
가만히 있으면 스스로 발산하는
다시 말하면 산만한 사람이다.
모든 발전은 결핍에서 비롯된다는 사실.
그래서 나는 수렴하는 법을 찾아갔다.
혼자 펼쳐지는 생각들을
조심스레 모아놓는 일은 꽤 어렵다.
자꾸만 도망치는 녀석들을
어르고 달래며 한 곳에 잡아둔다.
사실 지금도 어색한 과정이지만
글을 쓰며 많이 좋아지고 있다.
가볍게, 뇌 빼고 쓴 글은
내가 봐도 읽히지 않기 때문에.
나아가 따뜻한 보리차를 마시며
아주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차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가지는
이유 모를 경건함이 나를 차분하게 한다.
사실 수렴과 발산은 하나의 흐름이다.
분명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하나다.
이를테면 눈(snow)에 대해 글을 쓴다고 생각해 보자.
눈이라는 한 단어에서 출발해,
연상되는 생각들을 펼쳐낸다.
그중 적고자 하는 주제나 방향을 찾아
가지를 치며 한 곳으로 집중시킨다.
아쉬움이 남는 아이들은
잘 남겨두었다가 다른 글로 써낸다.
다시 말하자면 변화 없이 머무는 건
흐르지 않고 고여버린다는 이야기다.
동시에 한 방향을 향하더라도
과정에서는 발산과 수렴, 여러 갈래가 생긴다.
언젠가 스스로를 원망했었다.
왜 이리 산만할까.
왜 하나만 집중하지 못할까.
지금은 나의 장점이자 강점이 되었다.
보다 많은 지점을 자연스레 확인하는 관점으로.
나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나만이 결정할 수 있다.
펼치는 대신 모으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수록
키워드로 남겨두고 하나만 붙잡는.
술과 함께 할 때는 쓰지 않는 녀석들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차와 함께 할 때는 쓰고 있는 녀석에 대한
소중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아쉬움 보다 소중함을 느끼는 삶.
앞으로의 길잡이가 되어줄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