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인 대신 슴슴한

by 로그모리

페어링이란 개념이 있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음식에 술이 라가기도 하지만

음료에 음식이 따라가기도 한다.


아 물론, 나는 그냥 마셨다.


맥주를 마시면 그 타격감에 어울리는

짭짤하거나 기름진 음식을 찾는다.


보리차를 마시면 그 은은함에 어울리는

슴슴한 음식을 찾는다.


그래서 찾는 게 어렵다.

슴슴한게 집에 없다.



추워서 그런지 요즘 따라

배가 많이 고프고 식욕이 돈다.


그래서 마실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가

무언가를 챙겨 먹는 중이다.


동시에 마시는 음료가 변화했으니

그 차이를 대략적으로 표현하자면.


맥주에는 썬칩 같은 자극적인 과자라면

보리차에는 참크래커 같은 슴슴한 놈을 고른다.


보리차에 과자라니, 생각했었다.
뭣이 중한가, 맛있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간이 세지 않은 녀석과

은근히 궁합이 맞아 만족하는 중이다.


찰떡은 아니나 은은한 조화가 궁금하다면

시도해 보기를 추천한다.



당연히 나오는 조합들이 있다.


삼겹살 - 소주

치킨 - 맥주

꿔바로우 - 고량주

초콜릿 - 위스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아주 애정하는 녀석들이다.


다만 모두가 그러하듯

매일매일을 그럴 수는 없다.

(물론, 나는 매일이었기에 지금 보리차로 바꾸는 중이다.)


숨 쉬듯 이어지는 주문, 혹시 아는가.

'여기 삼겹살 2인분 하고 참이슬 하나 주세요!'

'여기 반반 하나랑 500 두 잔이요!'


어울리는 조합은 누구나 알려주었지만

없어도 된다는 건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차를 가지고 먼 곳에서 회식을 했을 때

강제 금주령으로 인해 깨닫게 되었다.


술이 없어도 괜찮은 것 같기도..?



시간이 갈수록 불편한 술자리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소화불량과 체함,

심지어 숙취까지 심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술자리를 줄이고

오히려 집에서 혼술을 즐기곤 했다.


몸에 새겨진 무의식 반사는

점점 이겨내게 되었으나


또 다른 중독의 증세가

집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이것도 어쩌면

필수는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보리차를 사 오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나의 중독은

보리차로 견뎌낼 수 있는 것이었다.


글쎄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몇 년 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음이


나에게는 꽤나 고무적인 일이다.

보리차 맛있다. 식은 아메리카노 맛.



바늘 가는데 실 간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울리는 조합이나 짝이 있음을.


당연스레 따라가는 짝꿍이 있고,

짝꿍을 데려오면 그에 맞춰 변화한다.


어쩌면 나의 관계에서도,

스스로를 대함에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자극적인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과 있을 때,

잔잔하지만 편안함을 주는 사람들과 있을 때.


분명 나도 다른 버전으로 존재한다.


스스로를 대함에서도 마찬가지.

나를 어떤 상황에 노출시키는가.


릴스가 켜져 있는 핸드폰은

내게 스크롤을 하도록 만든다.


글을 쓰기 위해 정리된 책상은

내게 글 쓰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환경을 설정하는 것으로

나의 모습을 만들어갈 수 있다.



릴스 대신 글을 쓰고 싶다면

글의 짝꿍인 노트와 브런치를 켜두고.


술 대신 차를 마시고 싶다면

물을 끓이고 보리차를 타보고.


자극적인 친구들 대신

슴슴하고 진국인 친구를.


짝꿍을 찾아,

나를 데려가 보자.

이전 02화차가운 대신 따스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