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만취하여 기억이 뜨문뜨문하면
어김없이 후회와 미안함이 남는다.
어제 혹시 실수한 거 없어?
미안, 그거 술 마셔서 개였어.
다소 직설적인 표현이지만
한 번쯤 해보았을 말이라 생각한다.
술을 마시고 취하면
나를 분리하고 싶어 한다.
그건 내 모습이 아니라고,
잊어 달라고 말하게 되는 마법.
보리차를 마시고 나서
나는 이런 부탁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나로 또렷하고
사과할 일이 없어졌다.
실수한 거 아닌데?
그게 내 생각 맞아.
오히려 나의 말들이
더 무게 있게 닿는다.
따스한 차와 함께 하는 시간은
보다 깊은 나로 이어진다.
오히려 이렇게 깊은 얘기도 될까
고민하며 골라내는 느낌에 가깝다.
물론,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듯
술의 힘을 빌어 나오는 진심도 있다.
심지어 술을 매우 사랑하는 나는
취중진담으로 글을 적었으니.
술을 멀리하고 있는 지금도
그 사랑은 식거나 변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버전의 내 모습을 보고자
매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술로 인해 분리되는 순간을
꽤나 예리하게 알아볼 수 있다.
구력.. 주력이라고 해야 될까.
주력이 찬만큼 자아가 분열하는 모습을 꽤 봤으니.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기억을 잃고 전환이 된다고 한들
그들의 술에 대한, 자리에 대한 의지가
사라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좀비가 되어
맹목적인 의지로 살아 움직인다.
나는 이런 좀비가 싫다.
딱 그전까지만, 인격체로 대한다.
물론 나 역시도 좀비인 때가 있었고
다음 날 접시물을 찾아 코를 박고 싶었다.
그토록 싫어하던 모습을 한 나라니.
정말 끔찍하게도 원망스러웠다.
그 이후로 실수는 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큰 문제없이 조용히 즐기는 취미가 되었지만.
분명히 느꼈던 건 나와 분리하고 싶은
동일시하고 싶지 않은 처절한 욕망이었다.
그 모습은 절대 내가 아니라고,
술이 원수라고 외치는 나를 마주하며
아, 내가 이기지 못한다면
거리를 둬야 하는구나 처음 떠올렸었다.
원체 생각이 많은 탓일까
글을 적고 싶은 마음이 커서일까
술과 셀프 자아 분열의 경험은
지금 꽤 유용하게 내게 남아 있다.
즐기고 사랑함에도 인내할 필요
모든 전원이 꺼져도 이어지는 의지
처절하리만큼 강렬한 감정의 에너지
분리할 수 없다는 날 선 사실까지.
잠시 알코올을 멀리 하며
정리하는 생각은 흥미롭다.
다른 곳에 의지하려는 습성을 내려놓고
어떤 상황에도 이어갈 의지를 새겨보고
염치를 알기에 처절한 감정을 이해하고
그럼에도 이어지는 나의 모습을 수용한다.
이런 관점의 전환은
아주 큰 차이를 만들었다.
쪽팔려서 그러지 말아야지 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디를 향하는가 로 변한다.
다소 오글거리듯 보일지 몰라도
진심으로 이런 생각들이 자라난다.
술은 마시면 마실수록
생각이 단순해진다.
오히려 중간중간 생략되는 메커니즘에 가깝다.
논리가 껑충껑충 점프를 한다.
차는 마시면 마실수록
생각이 단순해진다.
다만 더 명확한 중심을 찾아가는 메커니즘이랄까.
더 근원으로 다가가는 느낌에 가깝다.
여러 번 우려서 마실수록
끝에는 맹물에 가까운 맛이 난다.
그럼에도 효과는 탁월하니
아마도 맛보다는 행동이 중요한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차를 마시는 시간이
나를 살펴보고 글을 적어가는 때이기에.
나를, 나의 감정을 분리하고 싶어
냅다 술을 들이붓던 날들이 스친다.
대부분은 창피였고, 우울이었으며
도망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를, 나의 감정을 알고 싶어
느린 호흡으로 차를 마셔본다.
역시나 창피였고, 우울이었으며
대신 마주 보려, 감싸보려 노력하는 마음이다.
내가 느낀 모든 것들은
결코 분리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내게로 이어져 돌아오고
인정하고 스스로 떠나도록 배웅해야 한다.
나를 괴롭히던 감정들이 떠나지 못한 건
도망치며 배웅해주지 못했던 탓이 아닐까.
그들이 이제야 하나 둘 떠날 준비를 하는 건
괜찮다 인사를 건네며 배웅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도망쳐도 괜찮다.
포기해도 괜찮다.
다만 진정으로 그러고 싶다면
나를 분리하는 대신 이어진 채
마주하고, 배웅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