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
당연한 듯 원샷을 때린다.
'캬~ 좋다!'
'어우야, 안주 환상적이고'
술을 목에 넘기고 나면
자연스레 말이 터져 나온다.
후- 스읍
조심스레 차를 마신다.
흐음-
후-
차를 목에 넘기고 나면
자연스레 숨을 길게 뱉는다.
맥주 대신 보리차를 선택하고
마시는 행위 자체가 달라졌다.
쫓기듯 말을 뱉어낼 때와
차분히 숨을 뱉어낼 때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리 길지 않다.
약 3초의 정적은 생각의 주인을 바꾼다.
이미 떠난 말이 주인이 되어
그에 이어지는 대화를 할 때와
스스로 말의 주인이 되어
하고 싶은 대화를 시작할 때.
같은 시간, 같은 이와 있어도
그 대화의 흐름과 질은 확연히 달라진다.
아 물론, 술을 사랑하는 이로서
위스키에 비유한다면 할 말이 없다.
위스키도 흡사 차처럼
음미하고 말을 아끼게 되니.
이 부분은 조금 귀엽게 넘어가주기를 바라요.
우리는 언제 말실수를 하게 될까.
논리가 빈약할 때?
거짓말이 점점 커질 때?
좋아하는 사람 앞에 긴장할 때?
모두 맞겠지만, 공통적으로
조급할 때 말실수를 하게 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했던가,
궁지에 몰릴수록 오디오가 비는 걸 견딜 수 없다.
되돌아보면, 차분하게 말이 적은 사람이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무서운 경우가 많다.
(어머니의 침묵이나, 아내의 침묵 같은)
물론 잘못을 저지르고 당당하라는 말이 아니다.
조급해지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다.
그렇다면 조급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러닝, 헬스, 요가, 명상 등등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것들에서 중요하게 말하는 것.
바로 호흡이다.
호흡을 조절할 수 있으면
그에 따른 심박과 긴장을 다룰 수 있다.
여기서 앞서 말한 마시는 행위 자체의 변화가 필요하다.
술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눌 때와 차를 두고 나눌 때는 다르다.
진솔한 이야기가 하고 싶다면
술이 아닌 차를 두고 나누기를 권한다.
(음흉한 속마음을 혼자 듣고 싶다면
술을 잔뜩 먹이고 듣는 것도 방법이지만.)
조급한 마음을 내려두고,
한 번 더 생각하고 하는 말의 무게는
상대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대개 갈등을 해결하는 깊은 대화는
술이 없는 자리에서 성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모르고 있던 때에도 겪어 왔으니,
알게 된 지금은 더욱 그렇게 대화하려 한다.
양측이 호흡을 완벽하게 다룰 수 없다면,
간접적으로 차의 도움을 받아보는 건 어떨까.
좋은 대화에는 달변이 아닌 경청이 중요하다.
말을 잘한다고 해서 그의 모든 이야기가
좋은 대화로 남지는 않는다.
경청은 집중도 필요하지만,
침묵의 시간이 동반한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잠시 멈추어
상대의 말을 들으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항상 다짐하면서도 마음처럼
매 번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대화도 마찬가지.
때문에 마실 것의 도움을 받는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깊은 대화라면
강력하게 보리차를 추천한다.
왜 우리는 듣기보다 말하려 할까.
스스로를 부정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고
스스로가 맞다는 걸 증명하려 애쓰기 때문이다.
논리가 비어있는 부분은 억지로라도 채우려는
자연스러운 뇌의 생물학적 작용이다.
부정당하는 순간, 뇌는 고장 난다.
처음부터 다시 살펴봐야 하니.
때로는 가지고 있는 본능을 거스를 때
보다 나은 곳으로 향할 수 있다.
말하려는 대신 침묵하는
태도를 가져본다면
분명 달라지는 스스로를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