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즐거운 술자리 이후에
함께 따라오는 친구가 있다.
숙취란 녀석은 종종
눈치 없이 아침에 온다.
그 누구의 탓을 할까
어제의 나를 탓할 뿐.
이렇듯 숙취는 종종
아침을 어지럽힌다.
술과 차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려 아침에도 마실 수 있다는 것.
퇴근 후 밤에 즐기는 보상을
아침에도 즐길 수 있다니.
이보다 좋은 선택지가 있을까.
힘겹게 일어난 아침,
물을 끓이며 양치를 한다.
제법 봐줄 만한 상태가 된 채
화장실을 나서면 물이 준비되고
새 보리차를 텀블러에 담아
끓은 물을 천천히 붓는다.
새로 생긴 이 루틴은 능동적으로
보다 활기차고 따스한 아침을 만든다.
맥주 대신 보리차를 선택하고
생각지 못한 변화가 있었다.
이제 와서 느껴보니
항상 숙취가 있었다.
매일 마시는 맥주였으니
당연하다 말할지 모르나
당사자인 나는 전혀 몰랐다.
당연했으니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낯선 몸을 마주하니
잠시동안 몸살을 앓았다.
몸도 익숙해져 있었는지
새로운 상태가 이상했나.
숙취가 사라진 생활은
이처럼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대신 자리한 보리차를 마시고는
아침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내게 아침은 그저 억지로
움직이는 시간이었으나
보리차를 챙기는 생활이 오고
일종의 루틴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없던 개념이 생겨버리니
없던 욕심도 생겨난다.
아침의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하여
사용하고 싶다는 생소한 욕심.
물론, 아직 온전하지는 않으나
분명 매일 시도하고 있다.
아침의 시간만큼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은 찾아볼 수가 없으니.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처음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맑은 정신이라는 표현은
다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숙취가 기본 상태였던 내게
맑은 정신이란, 판단이 명료할 때.
다시 말해 알코올의 유무가 아닌
생각의 선명도에 따라 갈린다.
보리차를 택한 후 잠깐의 몸살이 지나
맑아야만 하는 정신이 탁한 순간을 거쳐
나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결국 중심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물론 과했을 때엔 말이 다르겠으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가끔 떠올려 본다.
온전히 글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나는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직장을 그만두고, 모든 시간을
글 쓰는데만 사용할 수 있다면.
외부와의 연결을 단절한 채
글만을 적어갈 수 있다면.
해보기 전에는 모를 일이지만
결론은 그렇지 않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있기로는
분명 아쉬운 상황에서 더 잘하려 하고
여유가 생겼을 때
간과하게 될 테니.
큰 변화를 앞두고 있는 지금
오히려 아침을 찾으려 노력하고
맑은 정신이 무엇인지 떠올리고
만들어 내려하는 게 아닐까.
결국 나를 사용하는 건 나뿐이고
방법도 스스로 찾아야 하는 법이니.
숙취와 맑은 정신은
외부요인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굳건하게 자리 잡은 의지와
행동을 위해 만든 환경이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형태로 나타난다.
숙취도 맑은 정신도
행동으로 이어졌을 때 존재한다.
나는 생각에 머물지 아니하고
사소한 행동으로 쌓아가려 한다.
맑은 정신에서 시작되든
숙취에서 출발한 것이든
적어내어 펼쳐두고
기꺼이 마주할 것이다.
또 아는가,
술냄새나는 글도 매력적일 수 있고
차분한 차 향기가 나도 좋을 수 있으니.
오늘도 한 글자 적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