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을 견디는 법

디지털디톡스 #005

by 최기훈

휴대전화를 치워두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건 자유가 아니다. 오히려 불안이다.


지하철을 기다릴 때,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 전의 짧은 순간,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예전 같으면 그냥 멍하니 서 있거나 주변을 바라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몇 분도 견디지 못한다. 손은 자동으로 휴대폰을 찾고, 화면을 켠다. 특별히 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손이 허전하고, 침묵이 어색하고, 기다림이 낯설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했을 때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휴대전화 없이 정거장에서 서 있는 일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불편했다.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화면을 보는데, 나만 멀뚱히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세상에서 혼자만 뒤처진 듯한, 설명하기 힘든 고립감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견디지 못하는 건 기다림이 아니라 빈틈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빈틈을 두려워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을 낭비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침묵조차 불안해서, 상대와 대화 중간에 잠깐의 공백이 생기면 무슨 말이라도 꺼내 채우려 한다. 현대인은 ‘쉼 없는 자극’에 익숙해져 있다.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보고, 메시지를 주고받고, 정보를 검색하며 하루를 보낸다. 이 모든 활동이 끊기는 순간 우리는 곧장 불안을 느낀다. 빈틈은 마치 결핍 같고, 공허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빈틈이야말로 우리의 뇌에게는 탈출구라는 사실이다. 심리학자들은 외부 자극이 차단될 때 뇌가 스스로 생각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내적 자극 회복’ 이라 부른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억눌린 감정을 직면하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생각을 연결하며, 때로는 창의적인 발상을 떠올린다. 단조롭고 심심한 시간은 사실 우리 정신이 스스로를 재정비하는 귀한 기회다.


예컨대 버스 정류장에서 멍하니 서 있을 때 문득 떠오르는 기억, 샤워 중에 스치듯 떠오른 아이디어, 밤 산책길에 불현듯 내려앉는 깨달음. 모두 빈틈에서 비롯된 선물이다. 만약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봤다면, 우리는 그런 깨달음을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이 빈틈이 너무 불편해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조금씩 버티는 연습을 했다. 지하철이 오기 전 5분은 그냥 하늘을 보며 서 있기, 식탁에서 음식이 나오기 전엔 잠시 주변을 둘러보기, 강의실에서 수업이 시작하기 전 3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기. 작은 빈틈을 억지로 채우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는 연습이었다.


그러자 서서히 변화가 찾아왔다. 빈틈은 더 이상 공허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었다. 하늘의 구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내 마음이 지금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혹은 오늘 꼭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가 또렷해졌다. 내가 외면해왔던 내면의 목소리가 빈틈을 통해 올라온 것이다.


현대의 문제는 빈틈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휴대폰을 켜고, 이동할 땐 이어폰을 끼며, 잠들기 전까지 스크롤을 내린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자극 속에서 우리는 내면의 공간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건 그 잃어버린 빈틈일지 모른다. 빈틈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오늘의 질문/실천 팁

오늘 하루, 딱 5분이라도 휴대폰 없이 멍하니 있어보자. 그 시간 동안 어떤 생각과 감정이 올라오는지 기록해보자.

‘심심한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보자. 짧은 산책, 대중교통 이동, 식사 전 기다림을 빈틈으로 두고, 그 자리에 자극 대신 사유를 초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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