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말티재의 굽이굽이길

[二輪紀行] ep. 13 보은에서 대전

by 최기훈


그러나 그 불편마저도 길의 일부였다. 산사의 고요로 들어가는 길은, 그렇게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길 같았다.


충청남도 보은으로 들어선다. 속리산 법주사로 향한다. 곧장 뚫린 터널과 잘 정비된 길이 있지만, 일부러 기수를 돌려 말티재를 택했다. ‘한국의 뉘른부르크링’이라 불리는 길. 굽이굽이 산허리를 휘도는 길은 기다린 뱀이 똬리를 튼 것만 같았다. 오토바이는 굽이를 돌 때마다 속도를 높였다가 낮췄다. 몸은 기울었고, 눈은 굽이 너머를 좇았다. 속도는 길에 붙어 있었지만, 숲은 묵묵히 그 위를 덮고 있었다.


굽이를 빠져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조의 어가 행차에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려 길을 열어주었다는 전설이 있는 정이품송이 나타났다. 기울어진 줄기와 잘려나간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여름 태풍으로 인해 큰 가지 두 개가 훼손되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나무는 기울고 상한 몸으로 육백여 년을 그 자리에 버티고 서있었다. 제 아무리 나이가 들고 몸이 성한 데가 없다한들 그 고고함과 기품만은 완강해 보였다.


법주사로 향했다. 경내 가까운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울 수 없었다. 이륜차는 주차장 중 가장 아래 먼 곳에 세워두고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네 발 달린 자동차들은 아무런 제지 없이 통제소를 통과하는 모습에 나는 억울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불친절한 주차 관리인의 태도에 나는 더 화가 났다.


종무소로 들어가 스님과 마주 앉았다. 삼십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스님은 내 말을 끊지 않았으셨다. 고개를 끄덕이며 끝까지 들어주셨다. “여기는 관광객이 오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스님들과 불자들이 수행하는 도량입니다. 신성한 자리입니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개인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단체 라이더들이 몰려와 소란을 피운 적이 있었다 했다. 배기음이 산사의 고요를 해치기도 한다고 했다. 아마 그런 경험들로 인해 이런 규정들이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규정이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필요하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마음이 풀리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스님의 경청과 말씀은 따뜻했고, 나의 마음은 조금씩 누그러졌다. 엔진의 소리는 내게는 운율이나, 산사의 고요에는 소음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법주사입구에서 법주사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은 뜻밖에 아름다웠다. 곳곳에 상사화가 피어 있었다. 붉고 여린 꽃이 숲길을 물들이고 있었다. 나무 그늘이 드리우고, 바람은 잔잔했다. 산책하듯 걷기에 알맞은 거리의 길이었다. 다만 라이딩 부츠가 발목을 조이고, 발은 불편했다. 그러나 그 불편마저도 길의 일부였다. 산사의 고요로 들어가는 길은, 그렇게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길 같았다.


법주사를 떠나 길은 대청호로 이어졌다.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와인딩 코스는 경쾌해서 충청지역 라이더들 뿐만 아니라 전국의 라이더들이 찾는 유명한 와인딩 성지이다. 오토바이는 굽이를 돌며 속도를 높였고, 호수는 멀찍이서 잔잔히 빛났다. 더 빨리 달릴 수도 있었지만 무리하지는 않기로 했다.


보은에서의 하루를 되돌아보니 말티재, 정이품송, 법주사, 대청호까지의 여정에 차례로 이어졌다. 계절의 아름다운 풍경과 법주사 종무소 스님의 따뜻한 말씀도 그 여정 속에 함께 기억됐다. 다만 주차 관리인의 불친절만은 여기 그대로 놓고서 나는 대전으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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